한줄 詩

어제의 역습 - 박순호

마루안 2018. 5. 30. 23:00

 


어제의 역습 - 박순호


눈빛을 거두지 않고 노려본다
발톱을 땅에 박고 눈알이 벌겋게 되도록
이를 악물면서 버틴다
진이 다 빠진 몸뚱이에 걸려 있는 하얀 얼룩들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자위를 하는 밤

알고 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못 이기는 척
엎드려 있었다는 사실을
속임수였다는 것을 알지만
잠깐 동안의 쾌감은 웃자란 패배를 잘라내는 힘이기에
나의 서식지로 날아든 새 떼이기에

그러나 오늘은 봐 줄 기세가 아니다
그믐처럼 다가와서
삽시간에 내 얼굴을 감싸는 검은 망토
어제의 역습이 시작된다
공포를 가르며 휘두른다
무방비상태로 얼어붙은 몸

이를 악물고 힘줄을 세워보지만
위태롭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제로부터 시작된 고통이


*시집, 승부사, 애지출판

 

 




단칸방 - 박순호


사람들은 고독한 햇살 같다고 말한다
담벼락에 붙어서 볕을 쬔다
고독했다고?
마주보고 서 있는 감나무에 대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홍시 안에도 한낮을 조율하는 붉은 힘이 담겨 있음을
밤에는 육십 촉 백열전구가 달빛까지 닿아 균형 잡힘을
모르고 하는 말
살 냄새와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를 통과하는 햇살
빛의 안쪽은 텅 비어 가볍다
가볍다못해 가오리연처럼 공중에 띄워놓는다
비루한 목숨 하나가 뒤적거릴 때마다
기우뚱거린다
창살이 부서지고 그릇들이 달그락거린다
길 잃은 바람이 길 잃은 개를 데려오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나의 침묵도 방향을 놓치고 만다
사람들이 말하는 고독으로 짜여진 방
감나무 잎과 잎 사이를 횡단하는 단칸방

 

 



*시인의 말

언젠가 당신은,
시 쓰는 일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삶이 쳐 논 올무에 걸려 발버둥 칠 때에도
왜 시를 쓰느냐고 물었다.
나를 쥐락펴락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애를 쓸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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