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성의 비교급 - 윤병무

마루안 2018. 5. 30. 22:22



인성의 비교급 - 윤병무



영리한 것보다는
정의로운 게 낫고
정의로운 것보다는
착한 게 낫다


하지만
사상체질(四象體質)도 두 가지쯤 섞여 있듯이
인성(人性)도 짬짜면이라 탄식이 이어진다


정의롭지 못한 영리함의 저속함이여
영리하지 못한 정의로움의 허망함이여
착하지 못한 정의로움의 역겨움이여
정의롭지 못한 착함의 막연함이여


그럼에도 굳이 하나만 골라 비교하자면
영리한 것보다는 정의로운 게
정의로운 것보다는 착한 게 낫다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
보는 것이 진실이다



*시집, 고단, 문학과지성








숲속이용원 - 윤병무



동네 미용실 많지만 이발소는 단 하나
독한 파마 냄새 싫어
세 평짜리 숲속이용원에 들어서면 싸구려 스킨 향이 반긴다
예나 지금이나 이발사의 손뼉에서 흩어지는 초록 스킨 향은
나를 유년의 골목길에 데려다놓는다


제사상에 오른 꽃하스 같은 회전간판 등(燈)이
자유 평등 박해의 색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곳
내게 한 달에 한 번 완전한 휴식을 안겨주는
철제 의자에 앉아 눈 감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 속에 잠긴다


밥 먹을 때도, 변기에 앉아 있을 때도 온전한 쉼은 없지만
심지어 잘잘 때도 꿈을 꾸지만
아지랑이에 감싸여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음도 잊게 된다


춘몽(春夢)에서 깨어나기 싫어
어쩌다 이천 원 더하면
"정통 이발의 명가" 숲속이용원 아주머니가
민들레 솜털까지 면도해주신다
그이의 늙어가는 손길 따라
환청으로 들리는 이미자 노랫소리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도
슬픈 가사는 깎여 가락만 들린다


이발이 끝나고 노래가 끝나고
먼동처럼 천천히 눈을 뜨면
한 달 동안 웃자란 내 검고 흰 시름의 끄트머리가
싹둑싹둑 잘려 바닥에 흩어져
시름들에 닳고 닳은 수수빗자루를 기다린다


그 이유만으로 내 머리칼은 자란다
비누거품 위에 얹어진 뜨거운 물수건이 식는 속도 만큼
세월은 간다 그래서
한 해가 저물면
숲속이용원 이발사는 내게 달력을 부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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