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노부부 - 정호승

마루안 2018. 5. 30. 22:11

 

 

노부부 - 정호승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못 눠서 고민이다
어머니는 관장약을 사러 또 약국에 다녀오신다
내가 저녁을 먹다 말고
두루마리 휴지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안방으로 모시고 가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늙은 팬티를 벗기신다
옆으로 누워야지 바로 누으면 되능교
잔소리를 몇번 늘어놓으시다가
아버지 항문 깊숙이 관장약을 밀어넣으신다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안 나온다고 밥도 안 먹는다
늙으면 밥이 똥이 되지 않고 돌이 될  때가 있다
노인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사촌여동생은
돌이 된 노인들의 똥을 후벼파낼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늙은 뒤에 또다시 늙는다는 것은
밥을 못 먹는 일이 아니라 똥을 못 누는 일이다
아버지는 기어이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다녀오신다
이제 똥 나왔능교 시원한교
아버지는 못내 말이 없으시다
어머니는 굽은 등을 더 굽혀 설거지를 하시다가
너거 아버지 지금 똥 눴단다
못내 기쁘신 표정이다


*시집, 포옹, 창비

 

 

 

 

 

 

옥산휴게소 - 정호승


아침 일찍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장의차 한 대 주차장에 멈춰선다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실나비 같은 상장(喪章)핀을 꽂은 젊은 여자들
우르르 차에서 내려 급히 화장실로 향한다
하늘은 푸르고 날은 따스하다
장의차 꽁무니에 타고 있던 관 속의 시신과 나는
차에서 내려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먼 산을 바라본다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다
꽃도 피면 다 부처님인가
누구를 믿어야 사람은 죽어도 살까
재빨리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나와 장의차 운전사가 시신에게 담배를 건넨다
인생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고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고
시신의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시신의 손을 가만히 잡아끈다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시신은 장지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지루하다
화장실을 다녀온 시신의 아들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급히 문자메씨지를 보낸다
시신은 담배를 끄고 어머니를 따라 다시 장의차를 향해 흐느적흐느적 걸어간다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려 병아리 떼처럼 화장실로 뛰어간다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가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더이상 울지도 않고 장의차가 급히 주차장을 떠난다

 




# 정호승 시인은 1950년 대구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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