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때 - 임곤택
춤추며 손목 끌던 것들 끝내
나를 버리는가
어떤 생각은 가시가 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커다랗게 몸을 부풀린 작은 것의 몸집
시들 것은 꼭 그렇게 시드는데
저녁을 부르면 겁먹은 짐승 한 마리 온다
선인장을 기를 때처럼, 물을 주거나 버려두거나
무엇을 기다린다면
정류장은 무관한 버스들로 꽉 차고
손가락을 명주에 감싸 불태운 사람을 안다
적당한 봄비었는지
그렇게 저녁을 기다린다고 말하면
무서운 짐승 한 마리 온다
송곳니와 빳빳한 눈썹 세워 으르렁거린다
거기 엉긴 적의와 꽃잎들을 나는
하나씩 떼어내야 하는가
배고를 때 허기, 라고 잘라 말하기 망설인다
그렇게 별말 없이
열 번 이상 손가락을 불태우고
선인장을 기르고
다가오는 사랑은 끝내 지켜보고
*시집,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문예중앙
모퉁이 돌면 - 임곤택
내가 닿자 당신은
손가락 길러 몸을 빚기 시작한다
안 보여서 우리 살아도 되는 곳
휩쓸리는 머리끝은 노래를 좋아한다
떨어진 나뭇잎은 예쁘지만 줍기 싫다
당신의 굴곡은 무뎌서
우리는 기대거나 서로 껴안고
닳은 신발, 가까운 사람들은 그게 늘 걱정인데
그것이 우리에게
꼭 맞는다는 사실은 모른다
넘어지고 일어서는 일처럼 우리는 금세 닳는다
당신은 생각을 빠뜨렸다 아카시아에, 향기와 가시에
세상이라고 불리는 몸
그것이 감싸 안은 투명한 부피
무릎이 부딪칠 때 우리는
이름이나 얼굴을 익히려 하지 않고
당신에게 머리칼을 잘라주는 어깨
소매는 하얗게 된다
뒷문을 열고 들어오는 긴 계단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시작하다 멈춰도, 눈이 빠져도
묻지 않고 우리는
*시인의 말
마트 하나는 문을 닫고
편의점은 두 개 더 늘었다
담배와 연기
술이 채워진 아메리카노 미들 사이즈
이런 아침은 어떤가
창 너머 창들은 안녕하신가
일찍 싸우고 늦게까지 위로받으려는
사내들의 고성방가
두 겹으로 주차된 자동차
누가 가장 좋은 값을 치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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