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목숨 - 조찬용
감춰 둔 보릿자루 내밀듯
뒤늦게 손을 들어 막차를 놓치지 않겠다고 투병하는 아버지
부산 큰딸네 집 옆 무슨 대학병원인가에
후두암으로 몇 주 입원을 하셨다
오뉴월 해는 무장 길어
급한 김에 널려놓고 온 논일 밭일을 생각하면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병실에 들어앉아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어머니의 심사
살다고 속 썩고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몇 번의 보따리 고비를 생각하면
당장에 팽개치고 나 몰라라 싶을 미움이 앞서지만
늘그막이 불쌍하여 5 년만 더 살아줬음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직도 모를 두 분 사이
언제 퇴원이 될지 모를 입원에
괜시리 사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병원비 많이 나오면
근근히 먹고 사는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했던
어머니의 실언
"인자 살 만큼 살았싱게
아덜덜 생각히서 정리허고 집으로 개깁시다."
기댈 곳 없는 어머니 실언에
병실의 밤은 오사허게 길기만 하고
어차피 다 온 길인데도
서러움이 복받치고 괘씸하기도 하여
그 날부터 아버지
쓸모 없이 늙고 찬밥 되어 버려지는가 싶어
식음을 전폐하고 토라져 등을 돌려 버리셨다
날이 가물어 가슴까지 팍팍한 날
아, 나는 갈 곳이 없다.
*시집, 국어 시간에 북어국을 만난다, 오감도
꽃상여 - 조찬용
누가 죽었는갑다
소쩍새 애간장 태우는 강둑길 따라
꽃상여가 먼 길을 간다.
진달래꽃보다 붉은 매김소리
만장도 보이고
딱딱하게 굳어
다시는 봄날을 담지 못하는 시린 가슴도 보인다.
사는 일이 죽는 일
어머니 뱃속을 훔치고 나올 때부터
황천길도 훔친 거였다.
사지 뻗으면 한 뼘밖에 안 되는 세월
인연 남아 마른 검불 같은 쓸쓸함을 남겼다.
돌아가는 길이 이런 것인가
산길 돌아서는 황천길에 진달래꽃이 온 산이다.
누가 죽었는갑다
눈 감고 마음 닫으니 밝은 대낮이 황천이다.
# 조찬용 시인은 전북 부안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시인정신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국어 시간에 북어국을 만난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가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세는 안녕하신가요 - 최대희 (0) | 2018.05.28 |
---|---|
우연히 내게 도달한 별빛에게 - 이재섭 (0) | 2018.05.28 |
적도에서 온 편지 - 이응준 (0) | 2018.05.27 |
어디에서 왔나, 이 향기 - 박두규 (0) | 2018.05.27 |
플라스틱 사랑 - 강윤후 (0) | 2018.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