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산으로 가는 아이 - 장호

마루안 2018. 5. 26. 21:53



산으로 가는 아이 - 장호



어려서 병약했던 아이가

그래서 비겁했던 아이가

골목에서 교실에서 짓궂음만 당하면서

뒤란에서 혼자서 놀던 아이가,


성냥곽을 건네주며 불을 질러보라고

그렇게 놀림을 당한 날 밤,

혼자 가서 산에 정말 불을 놓아버린

그래서 또 혼쭐이 난 아이가,


산을 알게 되면서 고개를 든다

머리 위로 빠져 나갈 물고를 튼다


세상사 무서워서 안으로만 파고드는

보통사람 틈서리로 헤집고 나와

바람 부는 들녘에서 휘파람을 분다.


산에는 본디

외로움이 밀어올려다 주는 것일까

꿈이 시켜 끌어올려다 주는 것일까.



*장호 시집, 신발이 있는 풍경, 답게








산에 가는 이유 - 장호



제 먹을 것 싸짊어지고 가서는

먹고서는 되내려오는 그 산에는

왜 가느냐 물으면,


입을 모아 말한다

건강을 위해서.


편안하게 상 차려놓고 먹기보다

산에 가서 펼쳐놓고 먹으면

건강에 더 좋으냐 물으면,


또 똑같이 말한다

먹는 것만인가

물 좋고 공기 좋고....


건강해서 그래 뭐 좋으냐 물으면,

하나같이 읊는다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 또 뭐 할거냐

다그쳐 물으면,

그때사 말이 없다.


산에는 그때 가야 한다.

건강이니 장수니

욕심을 안고 가면

산은 저만큼 돌아앉을 뿐이다.





# 개나 소나 산을 오르는 등산 대중화 시대에 진정한 산꾼의 얘기가 정곡을 찌른다. 산이야 누가 오든 포근히 받아주지만 오염된 사람들이 산을 찾아 더럽히니 문제다. 진정 산을 사랑하거든 산을 순두부 다루듯 하라. 다녀간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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