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길갓집에 앉아 - 황학주

마루안 2018. 5. 21. 19:05



길갓집에 앉아 - 황학주



길갓집 때얼룩 복개 안된 가슴 가닥에

그대로도 아픈 잘못이 용서도 없이 재생고무처럼 다시 놓여서

비빈 국수를 먹으며 겨울 놀을 본다.

내 사랑이 못 넘은 고개 하나 둘러 업고

소름 끼치도록 밟은 남도 마을

집 뜯어서 여기까지 어머니를 괴롭히며

차려놓은 설움의 독상 같은 노을,

이따금 사오는 붉은 약병을 쥐고 그리워해도

말이 안 닿으면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오늘,

울어 버리고 기운차린 어머니

산턱에 콧김처럼 올라선 겨울꽃

손수 편지 보내 주시다.

<이웃과 가까이 살아라>

<너희도 서로 만나야 할텐데>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열음사








두 해 지나서 - 황학주
-형에게



당신이 보이지 않은 한 해 두 해는
구부려 철사 옷걸이처럼 간결하게 걸린 기다림을 만들었다
출입할 때 피차 슬픈 살 발치에서 눈치만 흘금대던 말들이
터진 세월의 바지 주머니를 한결 쓸쓸하게 만들곤 했다
어둔 응달 작은 칸 안에 가슴 붙이고도 살았는데
우리는 어디 있나,
거기서 거기서 다시 무너져 나가진 마시오.
자꾸, 추억의 희끗한 시이소오 저쪽 사람을 데려가는 해.
눈 속에 두 꼬치의 눈물은 맺어
늦겨울 저녁 가책의 솔잎이 목을 찌르는 황토 많은 비탈을
나는 떽데구루루 굴러간다.






# 오래된 시집에서 아련한 내 가족의 상처가 살아난다.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 형과의 불화 때문에 늘 집 밖을 떠돌았다. 고추에 털이 나기 시작한 열 넷부터 시작된 나의 방랑기는 큰 형과 멀어지기 위해서였다. 한참 후에 시인을 알았지만 떠돌면서 읽었던 시인의 시는 큰 위로였다. 그의 약력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오래된 시집 날개에 실린 시인의 약력이 인상적이서 옮긴다. 이후에 나온 시집에서는 볼 수 없는 이력이다. 그러고 보니 여러 곳을 옮기며 산 시인의 발자국 자체가 시였다.



*황학주 - 1954년 광주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상고를 자진 퇴학하고 자전거포 점원, 목공, 선반 조립공 등을 전전. 늦깎이로 검정고시를 거쳐 세종대 영문학과 및 한양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7년 <사람>이 나오면서 시단에 첫 선을 보였고 <시힘> 동인이며 , 현재 전북 고창 해리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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