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물고기와의 뜨거운 하룻밤 - 김륭

마루안 2018. 5. 15. 19:04



물고기와의 뜨거운 하룻밤 - 김륭



나는 아무래도 눈물 한 토막을 전생에 두고 온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펄쩍, 어항 속을 뛰쳐나와 바닥을 팔딱거리는 금붕어에게 눈이 멀 까닭이 없다 화장을 지우는 당신 입안 깊숙이 나는 아직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달의 속곳이라도 훔쳐 입은 듯 달달해진 그림자 밑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바람이 발라낸 당신의 살이 만져지는 밤, 텅빈 어항 하나로 떠오른 나는 아무래도 눈물에 길을 가로막힌 것 같다


내일쯤 눈꺼풀을 잘라 내기로 했다 푸드덕 머리를 열고 날아오르는 새들보다 먼저 태양을 필사한 금붕어 배를 갈라야겠다


스르륵 바지부터 벗어던지는 혓바닥이 너무 달콤하고 뜨겁다


그러니까 내게 눈물이란 까마득히 밑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솟구치다 딱 두 눈을 마주친 물고기의 전생, 아무래도 내 몸은 영혼을 헛디뎠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둥둥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죽은 연어가 떠오른다


사랑해, 라고 속삭이는 당신의 거짓말로 살기엔
가시가 너무 많다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문학수첩








연탄곡(連彈曲) - 김륭


"내게 더 많은 슬픔을 주시구려."
- <조르주 바타유-불가능>에서



神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건 두 명의 인간과 하나의 입


세상은 언제나 four hand performance로 돌아간다는 얘기, 그와
그녀가 하나의 침대에 비문을 세울 수 있는 건 제각기 가슴에 모았던 두 개의 손을
네 발로 내려놓았기 때문이지만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입을 어쩌지 못해
음악이 태어나고 지옥이 열렸다는 말씀


믿어라, 인간의 그 어떤 권위나 가능성보다
말 못하는 짐승들의 뒷문을 통해 온다, 마침내 왔다
짧고, 깊고, 그리고 길게
늙지 않는 울음을 가진 인간들의 발밑에 神을 내려놓기 위해 바오밥나무는
몇 개의 손을 잘랐을까?


한때 배 속의 아기였던 그와 그녀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神은 인간의 숨을 음악으로 사용한다는 얘기, 그러니까
섹스는 죽어서도 썩지 못한 살(肉)의 한 구절로
영혼의 입을 틀어막는 일


울면서 왔으니까 울면서 가야 한다


가능한 한 아프게, 그리고
불손하게





# 김륭 시인은 1961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 원숭이의 원숭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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