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막 건너기 - 신경림

마루안 2018. 5. 10. 19:45

 

 

사막 건너기 - 신경림
-몽골에서


황량한 초원을 조랑말을 타고 건너자
허리에는 말린 말고기 한줌 차고.
톈산(天山)을 넘어 눈보라 속을 내달렸을
날렵한 몽골 기병처럼.
유목민 게르에 들어 몇밤 지새다보면
너무 지쳐 돌아올 길 아예
잃어버릴는지도 모르지.
누우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내 온몸을 따뜻이 감싸주는 수많은 별이 있고.

이방인의 문전을
조랑말을 앞세우고 기웃대다보면
어쩌면 이 세상이 다시 그리워도 지겠지.
도시의 매연과 소음까지
어른어른 꿈결 속에 보면서,
내 못나고 천박한 짓이 전생의 일처럼
아득해지면서.
어깨에는 물병 하나 삐딱하게 메고
바람 부는 초원을 조랑말에 업혀 건너자.


*시집, 낙타, 창비


 




낙타 -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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