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늙은 가수 - 허수경

마루안 2018. 5. 7. 20:21



늙은 가수 - 허수경
-뽕짝의 꿈



나 오래 전 병아리를 키웠다네
이 놈이 닭이 되면 내버리려고
다 되면 버리는 재미
그게 바로 남창 아닌가, 아무데서나 무너져내리는 거


반짝이는 거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영 시시쿠나


그게 바로 창녀 아닌가, 제 갈 길 너무 빤해 우는 거


닭은 왜 키우나 내버리려고
꽃은 피면 왜 다리를 벌리나 꽃에겐 씨앗의
꿈이란 없다네 아름다움에
뭐, 꿈이 있을 턱이


돌아오고 싶니? 내 노래야
내 목젖이 꽃잎 열 듯 발개지던 그 시절
노래야, 시간 있니? 다시 돌아올 시간,


나 어느 모퉁이에서 운다네
나 버려진 것 같아 나한테마저도,,,,


내일의 노래란 있는 것인가
정처없이 물으며 나 운다네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불취불귀(不醉不歸) - 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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