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람은 우주를 몰고 간다 - 김익진

마루안 2018. 5. 7. 19:56

 

 

바람은 우주를 몰고 간다 - 김익진


어디에서 오는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둠의 방랑자, 바람이 분다

이 사악의 길 위에서,
에돔에서 불던 바람이
달 위에 발자국을 지운다

안과 밖이 없이
시나이 광야를 쓸던 바람이
화성에 모래를 날린다

좌우대칭 상하가 없이
소나기를 밀고 달리던 그 바람이
헥토르의 땀을 식혀주었다

우주의 오만과 폭력이
시공을 뒤섞는다

바람은 시를 쓰고,
우주를 몰고 간다

 

*시집/ 기하학적 고독/ 문학의전당

 

 

 

 

 

 

숱한 바람이 되어 - 김익진


시공의 끝자락,
존재와 무(無)가 하나 되는 곳까지
꽃비를 내리자던 말은
숱한 바람에 흩어졌다

은하수 저편,
어둠의 별까지
손잡고 가자 했던 맹세도
천국의 비

가야 했던 길
가봐야 했던
길 위의 약속들이
숱한 바람이 되어 흩어졌다

실낙원 위에서
태양은 숨을 고르고
지난 날의 말들은
천 개의 바람으로 사라졌다

 

 

 

 

 

# 김익진 시인은 경기도 가평 출생으로 독일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2007년 <월간 조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회전하는 직선>, <중력의 상실>, <기하학적 고독>이 있다. 현재 한서대 항공신소재공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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