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청량사 불두화 - 황원교

마루안 2018. 5. 7. 18:26



청량사 불두화 - 황원교



퇴계선생 살아생전 그리도 좋아하셨던

봉화 청량산

바람도 물도 때 묻지 않아

그 품에서 자란 초목조차 푸르기가 칼끝이라

사시사철 고즈넉한 청량사

독경소리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낭랑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이 없는 봄날

스쳐가는 바람결에

청량사 청량한 풍경소리 들려오는 듯하여

고개 돌려 바라보니

내가 세상에 있음으로 인연 아닌 것 없고

누구라도 부처 아닌 사람 없으니

희디흰 불두화

그 환한 꽃길을 따라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

빛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

결국 명암(明暗) 사거리에서 갈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새하얀 신호등처럼

깜빡깜빡 피어나는

청량사 불두화



*시집, 오래된 신발, 문학의전당








간다, 봄날은 - 황원교



대지의 자궁을 막 빠져나와

혈흔을 갓 지운 어린 새싹마다에

햇살은 어깨를 토닥이며 몇 번씩 당부를 한다

-부디, 잘 살아라!


산 넘고 물 건너

겨울이 떠난 자리, 바람 자리

검게 불탄 기억들을 훌훌 털고

새파랗게 타오르는 나무들의 행렬 사이로

자욱이 새떼가 날아오른다


그러한 시간

아직도 눈물자국 가시지 않은

이별의 플랫폼에서 안개꽃 한 아름 안고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아


그대가 꿈꾸는 운명 같은 사랑은

스스로의 운명을 인식하지 못할 때

아니 자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을 때

별안간 찾아오는 것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

이제 곧

운명의 기차는 그대 곁을 스쳐갈 것이니

어서 그 기차에 올라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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