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낙화유수 - 이성목

마루안 2018. 5. 6. 19:46



낙화유수 - 이성목



창을 반쯤 열고 담배 연기 풀풀 내뿜다가 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밖을 본다.

당신 이미 늙어, 꽃 지면 마음 먼저 무너진다 하셨다.


빈 수레를
끌고
또, 밀고 가는
저 노부부,


나를 꽃구경하듯
느릿느릿,
나를 꽃구경하듯
어칠어칠


걸음걸이
눈시울에
휘어져 뜨겁게 닿는다.



*시집, 뜨거운 뿌리, 문학의전당








쓸 만하다. 내 발 - 이성목 



발은 더 이상 나를 미지로 데려가지 않는다.
어제는 당신이 세상을 떠났다. 오늘은 그 자리를 다른 당신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나를 아주 먼 곳, 융단의 강을 건너 당신의 나라에 보내고 싶었는데, 그 일을 도맡아 해야할 발이, 생각이 먼저 딱딱해졌다. 냄새나고, 냄새나는 생애는 신발 같은 것이었으나, 쉽게 벗어버릴 수는 없었다. 발가락 사이, 당신과 나 사이에 물집처럼 부풀어오른 추억의 쓰라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발만이 발을 버릴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시민이었던 나는, 오래 쓰면 닳아 없어지는 것들의 목록에서 발을 찾아냈다. 발의 소임이란 당신의 그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
얼마나 무모한가. 내가 여기 나를 남기려 했던 것, 밥을 벌러 오갔던 무수한 발자국들. 발목에 넥타이를 묶고, 발바닥에 월급봉투를 신고, 마음속에 살아서 꼼지락 꼼지락 거리는 무엇, 벌레 밟듯 지긋이 눌러 죽이는 것뿐이었으니
발은 나에게 새로운 생의 발자국을 찍게 하지는 않을 것이나, 아직은 쓸 만하다. 닳고 닳아 마침내 모든 휘청거리는 걸음걸이가 끝나는 곳에 당신의 나라가 있는 것처럼






# 두 시가 호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두고 읽힌다. 한 시는 여백이 많아 천천히 생각하며 읽게 만들고 다른 시는 빽빽히 이어진 다음 문장이 궁금해선지 자연스럽게 속도감을 갖게 만든다. 둘 다 좋은 시임은 분명하나 이렇게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요즘 이 사람 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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