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종다리 울음으로 - 서상만

마루안 2018. 5. 4. 20:56



종다리 울음으로 - 서상만



고향 봄보리 밭에 솟구쳐 울며 날던 종다리,
지금도 그 하늘을 울고 있을까
어쩌다 밀린 변두리 석계역, 낯선 내 처소에
그 옛날, 종다리 울음보다 더 숨찬 울음들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울고 다니네


생선, 육고기 썩는 냄새를 트럭에 매달고
배추 사려, 무우 사려!
고구마, 감자 한 근에 삼천 원-
왔습니다, 남해 갈치 서산 생굴이 왔습니다!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저 삶의 비애를!


하루가 멀다며 바뀌는 새로운 간판들
철판을 두르고 끝장 보려는 저 처절한 노점들
아, 밥 먹기 참 힘들구나
닳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눈을 감으면


개떡을 먹어도 눈물 모르던 내 유년의
그 푸른 보리밭둑길 종다리 울음이 그립다



*시집, 모래알로 울다, 서정시학








느릿느릿 - 서상만



뭉게구름처럼
둥둥 흘러가고 싶은 날이 있다


앞뜰에 내려앉은
가을 볕 한줌 짊어지고
하룻길 천천히 걷다보면,
누군들
한 백년쯤은 살다가지 않으리


빈손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고
느릿느릿 늙고 싶은 날 있다



*시집, 적소謫所, 서정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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