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진 자리 - 이선이

마루안 2018. 5. 2. 19:32



꽃진 자리 - 이선이
-둘-


이만큼에서야 보이는가
나의 몰락을
두 눈 퍼렇게 뜨고 바라보아야 하는
비애같은 것


잠시 또 그렇게 영원을 사는
비린내 성한 사랑같은 것


이제금 뜬눈 깊어 새벽까지 잇닿는 길이면
마음을 타고 오르는
도무지 이전의 生으로는 까닭도 알 수 없었던
헛물켜는 저 자리를
생손 앓듯 뒤척이며
나의 몰락을 바라보는 자리


그러나
첫정오른 시절에 뒹굴던
그 꽃다웁던 약속일랑 다 너에게 주고도
마른 속절에 저미는 약속 한소절은 남아,


곱게 썩은 魂 한줌은
움키고 말 자리



*시집, 서서 우는 마음, 청년정신








흰 봄 - 이선이



지고 핀다는 것들 다, 한꺼번에
지는 날을 기다려 볼 일이다
피고지던 사람(時節), 한번은 뜬눈으로
그 봄밤을 취하게 하였듯이
그러니
내 저 꽃들의 환호를 눈감아 줄 요량이다


술잔 가득 누이의 죽음을 출렁이던
듬성머리 사내와
생각해 보면 견딜 수 없는 것들
모두 몰려와서 아우성치는 밤
공터의 포장마차, 아니면
맨밥 한 술 들던 늦은 저녁상 머리던가, 아니면
이것들이 한 데 어우러진
봄날의 난장판 그 언저리에선가


그러나 나는 기다려 볼 일이다
피고지는 속닢 물들이는, 파랗게
멍들이는
봉오리 앙다문 저 애기꽃무지같은
희망,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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