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 멀미 - 원무현

마루안 2018. 5. 2. 19:15



봄 멀미 - 원무현



뽀르지 같은 것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빨간 돌기가 약수터 전체로 번진 것은 불과 닷새 뒤였다
진달래냐 철쭉이냐
사람들은 만발한 추측과 억측을 꺾어 화병에 꽂았다
침상머리나 식탁에 올려놓고 자고 먹었다
뿌리 없이도 여러 날을 버티던 것이 확신을 꽃 피울 무렵
방송사들이 다투어 헬기를 띄웠다
저녁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자
산야를 뒤덮은 붉은 꽃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점령했다
이튿날 관광버스가 꼬리를 물고 그 현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꽃멀미에 눈이 뒤집힌 몇 무리가 스스로 하산발목을 잘라버렸다
차라리 여기에 묻히자, 소주를 박스째 거덜냈다
쥑이주네 참말로 쥑이주네
혀를 꼬면서 꼬꾸라졌다
뒤틀린 입에선 질질 침이 흘렀다



*시집, 강철나비, 빛남출판사








봄봄 2 - 원무현



영희 아버지 지금쯤
빨간 츄리닝 사타구니 사이로 툭 불거져 나온 거시기
고랑마다 울끈불끈 올려놓고는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할 테지
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수박 접붙이기를 할 테지
이미 며칠 전에 그 일을 끝낸 옆동 비닐하우스에는 노란 꽃들 다투어 태어날 테지
어쩔거나, 앞산 뒷산엔 진달래가 덩달아 붉고
아침나절에 불붙은 이내 춘정 꺼질 줄 몰라라
새참을 낼거나
국수나 쫄깃쫄깃 말아서 갈거나
가서는 불문곡직!
서방님 거시기를 움킬거나 덮칠거나
오매오매 어쩔거나
삼신할매요 산신할배요
봄을 타도 환장하게도 탄 이년의 봄 탓에
어찌 안 되겠소 늦둥이나 하나





# 내숭 떨지 않는 원색적인 표현이 외설스럽지 않고 해학적이다. 시인의 능청스러움이 오탁번 시인 저리 가라다. 시는 고상해야 한다고 믿는 얌전한 독자들은 그냥 넘어가시라. 이런 시는 내 혼자만 읽어도 충분히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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