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의 비밀 - 홍윤숙

마루안 2018. 4. 15. 18:49



꽃의 비밀 - 홍윤숙



매화꽃 지고
산수유 지고 나니 사월이 오고
온 마을 바글바글 꽃이 피기 시작한다
진달래 개나리 백목련 자목련 벚꽃 살구꽃
키 낮은 앵두나무 찔레 황매 복사꽃 정향목
이팝나무 조팝나무 나무란 나무들 난리난 듯
자고 나면 팔짝팔짝 북을 치고 차일을 친다


왜 모든 꽃들은 한 시절 한꺼번에
아우성치듯 피어나는가
무엇이 저 단단하고 흉측한 껍질 속에 숨어
날마다 아롱다롱 요술같이
꽃을 빚어내는가
나는 그 나무 속의 비밀을 알고 싶어
단단한 살가죽 헤집고
나무 속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 속이 어찌 그리 휑하니 비어 있는지
비어서 바람 휭휭 부는 벌판인지
마치 헛간처럼 비어서
바람 불고 있는 내속과 같아
눈을 감았다


그래, 아름다운 것은
제 속에 일만 근의 고통을
차곡차곡 숨겨두는가보다



*홍윤숙 시집, 그 소식, 서정시학








가수 최백호 - 홍윤숙



세상엔 수많은 가수가 있다
각기 개성이 다른 기라성 같은 가수들
그 중에도 나는 가수 최백호가 좋다
성성한 백발에 지친 듯 쇠잔한 모습
순탄치 못했던 삶을 말하는 듯
쓸쓸한 적막 여윈 어깨 감싸고
한 생애 영욕이 그늘져 있는
그의 목에서 쏟아지는 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슬픈 고백이고 탄식이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지 않는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한숨처럼 불길처럼 토해내는 소리의 음색
떫은 풋감 같은
녹슨 유기 같은
비애의 흐느낌 예스럽게 가슴 적신다
구멍 숭숭한 생의 뒤안길
혼자 돌아가는 뒷모습 보이는 사람
어느 장중한 클래식도 그 음색
흉내낼 수 없는 최백호만의
소리이고 빛깔이고 삶이고 눈물, 아픔이다
그렇게 그의 음색은 녹슬어 신비하고
이슬비처럼 듣는 가슴 적신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한 생의 회한
녹이 슨 탄식, 쓸쓸함이 살에 배어
무겁게 가라앉아 한이 서린 남자
때로 드높이 뜨겁게 여울져도
서리진 가슴 풀리지 않는 얼음
켜켜로 쌓인 그리움 같은 불이
하나로 어울려 빚어내는 차고 뜨거운
미움과 정, 희망과 절망이
실타래처럼 엉켜 짜여진 소리
그 마음에서 쏟아지는 한 시대
한 생의 정과 한,
가수 최백호는 한 시대 가슴에 목에
녹슬어, 온 사람 가슴에도 녹슬여 놓고 간다
불후의 가수 최 백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