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며칠을 봄바람 불어대더니 - 강시현

마루안 2018. 4. 15. 18:05

 

 

며칠을 봄바람 불어대더니 - 강시현

 

 

며칠을 봄바람 불어대더니

이런! 고단새 뭔 일인가, 매지구름 흥건하네

 

어제 동틀 때

창 열고 보았던 목련 봉오리

눈에 담아 두었더니

금세 기지개 다 켜 버렸네

암만, 목련 피지 않으면 봄도 아니지

 

저 구름 떨어지면

무거워 꽃목 부러질까

조마조마하니 바람도 살살 불어라

내 삼백예순다섯 날은 목련의 자리

이제 황급히 지면

그 많은 밤들 어찌 묵새길까

 

가슴 졸이며 봄비를 멈추고 싶다네

 

 

*시집, 태양의 외눈, 리토피아

 

 

 

 

 

 

사월 - 강시현

 

 

꽃들이 목숨을 버려서 거리는 어두웠지

 

주인 있는 땅과 모두가 주인인 허공 사이로

빈 주머니 같은 세월이 던져지고

알 수 없는 이름과 더욱 가려진 마음과 어둠의 손톱이

땅을 긁으며 새하얗게 떠다녔지

 

원한을 갚지 못해 철썩이는 파도처럼 연신 바람이 덮쳐와

어둠을 키워내고

나는 영원히 경계의 바깥에서 창백한 얼굴로 시간을 저울질했지

 

집나온 개처럼 흘끔거리며 살아온 나이가 저물고

머리 감을 때 머리칼이 뭉텅뭉텅 하수구에 떠밀려 가던 즈음,

오월로 가는 터널에서 굳어버린 목덜미를 컥컥거리게 만드는 이유를

꽃들은 흔들리다 떨어지면서도

끝내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지

 

각자의 삶을 찾아서

그래서 더욱 비릿한 오늘을 껴안고, 내일을 안고 간다

사월엔 모든 물상이 주춤거린다

여자의 몸에서는 사월의 살냄새가 나고

어찌해서 반복의 덫을 깨뜨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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