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겹의 날개 - 김창균
백목련 지고, 자목련이 피기 시작한다
크고 실한 꽃들은 꽃 시절이 짧았으므로
죄지은 날들 또한 짧았으리
간밤에 꽃같이 환한 열망을 가슴에 달고
누군가는 다음에 올 누군가에 꽃자리를 내주며
한 생을 넘어갔으나
꽃을 버린 목련나무는 의연했다
이 의연함 앞에서
만 겹의 날개를 달고도 날지 않는
무쇠 같은 목련이여
꽃 피는 건 부럽지 않으나
꽃 지는 게 더 부러운
오, 팔랑 팔랑대는
만 겹의 봄이여
*시집,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문학의전당
꽃구경 - 김창균
옷장을 연다, 거기 내가 사랑했던 한 시대가 걸려 있다.
저 통시적인 불편함들이 붉은 꽃무늬로 장식된 봄
나는 겨울 외투를 벗고
지나간 시절 한 벌 꺼내 입는다.
순간 화사하게 번지는 무늬들, 붉은 꽃들.
겨울옷을 입은 나와 봄옷을 입은 나무들은
서로 건너다볼 뿐 말이 없다, 말이 없어
옷장 앞은 잠시 침묵이고 침묵이 길어지면
저 어색을 달아나기 위해 나는 고민할 것이다.
색 다 날린 봄옷을 입은 벚나무 아래서
생각해보면 아득하니
너는 너 쪽으로만 눈이 멀고
나는 내 쪽으로만 눈이 멀었었구나
그리하여
서로가 낯설게 마주하며
나도 너도 알싸하게 분분하게 저물고야 마는구나.
마치 파경처럼 꽃잎이 지는구나.
# 김창균 시인은 1966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강원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먼 북쪽>,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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