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뽕짝메들리 - 조용환

마루안 2018. 4. 13. 20:50



뽕짝메들리 - 조용환



한낮에도 잠 오면 그냥 자고, 그러다 깨면
깬 채로 멍하니 나는 좋다
어딘가 무작정 떠나야 하는 것은
사피엔스의 혈통이겠지만 나는 아직
잠이 부족하고 여전히 가난하고
모험보다는 텃세를 보장받으면서 뻐꾸기 울음
미끄러지는 산마루를 건너보다가
햇살포목 싸인 막걸리 취한 목소리 들려오면
딱 한 사람쯤 만나면 좋다 신파를 살아도
야당도 여당도 아닌, 그늘 같은 사람이 좋다
나보다 먼저 이토록 깊은 벼랑을 슬어놓고도
수그러진 감나무는 기껏 까치네 이웃뿐이지만
거기 텃밭에다가 귀를 대어보기도 하고
발가락 까닥거리며 하품을 쩌억 뿜어내고
궁리랄 것도 없는 서적 몇 권 집어다가
파라락 넘겨보고, 그래도 어딘가, 꼭 다녀올
낮잠처럼 펼쳐지는 드라마 몇 편 떠오르면
노랫가락 몇 소절 따라 흥얼거리다가
물 한 모금 하늘 보고
물 한 모금 기지개 켜면
그러면 좋다, 뻐꾸기도 제 게으름을 잡아
천부적인 장단을 터득하였으리니
저나 나나, 서로 멀거니 그런 시절도 잠깐이리니
그러면 좋다 까짓것, 



*시집, 냉장고 속의 풀밭, 문학의전당








강허달림* - 조용환



그이의 노래는 오늘도 폭설이 내린다
나는 자꾸만 미끄러지면서도 사랑한다고
아무도 듣지 않는 속삭임을 되풀이한다
축축한 구두와 시린 가슴팍으로
언젠가는 저 설원을 넘어가야 한다고,


그이의 노래는 끝없이 주문한다
외투와 키스의 저 모래언덕을 넘어야 한다고
샘을 찾는 여정은 벌거벗은 몸일 수밖에 없다고
별자리는 애초부터 미끄러운 충고였다고
오아시스는 그저 기적이 아닌 생활이라고,


그이의 노래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녹슨 바퀴처럼 끅끅 헛바퀴를 돌 때가 있다
장대비처럼 쏟아졌다가 땡볕처럼 말짱해진다
그런 날씨를 평생 살았다고 회고하면서도
악기를 위한 농사를 지은 적이 없었노라고,


그이의 노래는 꿈결마저 출렁인다
따스하고 부드럽고 자비로운 손길은
무지개처럼 피었다가 스러지는 가파른 계단이지만
자장가가 들여오는 그 집 앞에서 구두끈을 풀며
언젠가는 저 지붕을 고쳐야 한다고,



*강허달림: 한국의 싱어 송 라이터로 독특한 음색과 리듬의 뮤지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