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독 - 신기섭

마루안 2018. 4. 11. 20:20



고독 - 신기섭



목련을 보러 나온 밤의 옥상,
바로 앞 건물의 반쯤 열린 고시원 욕실 창문 너머 중년 남자가 자위를 하고 있다.
옥상까지 장대하게 커올라온 주인집 목련나무, 나도 환한 목련들도 남자를 훔쳐보는 것이다.


남자의 비대한 몸 전체가 붉다.
손에 잡혀 한참 만에 커진 자지가 가장 붉다.
벽을 짚고 있는 다른 한 손은 거미처럼 곤두서서, 천천히 가슴으로 건너와 목을 타고 오른다.
가슴을 폈다가 오므릴 때마다 파다닥파다닥
접힌 가슴살 옆구리살들 제 몸을 때리며 날아가려는 새의 날개같이 슬퍼 보였다.
점점점 핏줄이 몰려드는 中心,
아주 한참 만에 빳빳해진 그 끝에서 그러나 찔끔, 피어나 진득하게 맺혀 있는 중년의 즙(汁).
남자는 그만 욕실 바닥에 쪼그려앉고.
이 밤에도 손을 뻗어 만져보는 목련꽃의 목, 꽃을 보내기 위해 어제보다 더 흐물흐물 젖어 있다.
귀를 귀울이니 큰 물소리가 들린다.
고시원 욕실 남자는 비누거품을 풀어 몸을 씻기 시작하였다.



*유고시집, 분홍색 흐느낌, 문학동네








그곳이 작아지지 않는다 - 신기섭



거북한 점심 포만감 졸음에 겨운 오후
들락 말락하는 잠 속에 여자가 맺혀 있다
눈을 뜨면 성에꽃처럼 슬프게 지워질 것 같아
눈을 감고 잠에게 내준 여자, 그러나 잠의 본질은 폭력인가?
옷이 찢어지는 여자, 스스로 옷을 벗는 여자, 혈액봉투처럼
충만해진 내 혀가 잠 속으로 떨어진다 터진다 타오른다
번진다 녹는 여자, 나의 더운 몸속 가득 스민다
곧이어 환하게 다시 살아나는 여자, 이번에는
눈부신 치마를 입은 여자, 잠의 본질은 그리움인가?
먼 곳에서 누군가 보내주는 따스한 거울빛같이
내 얼굴 가득 춤추는 잡을 수 없는 치맛자락
여기 앉으세요! 애타게 갈구하듯
나의 파닥파닥 뛰는 눈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언젠가 저녁을 함께 먹은 여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여자,
잠이.... 추해진다.... 잠 속으로 불쑥
커진 나의 그곳, 힘이 들어온다 딱딱하게
잠을 굳어버리게 하는 힘, 목을 매단 몸 같은
빳빳한 수직의 아픔이 치솟아 숨막힌다
어둡고 차갑게 식어가는 잠 여자의 비명 소리
눈을 뜨고 싶은데 딱딱한 나의 몸, 허공에 떠 있다
입이 벌어지고 천천히 흘러나오는 혀가 느껴진다
이런 나의 몸, 잠조차 온전히 받아주지 않았다


잠시 뒤 눈을 뜨고 혀를 잡아넣고
너저분한 직장의 책상 위로 숨을 토해낸다
화장실로 가 마른입을 헹구고 뱉아내는
끈적끈적한 물, 잠의 본질은 사랑인가?
그곳이 작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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