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마틴 어스본>이 <조지프 마코비치>라는 남자의 87년 생애를 담은 책이다. 원래는 이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사진전의 전시도록이었는데 나중 글을 보완해서 책으로 나왔다. 마코비치는 1927년 1월 1일 이스트 런던 혹스턴의 올드 스트리트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계급인 코크니 억양을 쓰는 전형적인 영국인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유복하게 살지 못했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어머니가 죽자 혼자 살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살던 그가 80세 되던 해 우연히 사진가 어스본의 눈에 들어온다. 비닐봉지를 들고 훨씬 크 사이즈의 옷을 입고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 때부터 마코비치의 일상을 카메라 담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이스트 런던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딱 한 번 해변을 어머니와 간 것이 전부다. 그래서 세계대전의 혼란과 동서냉전 등 격변의 시대를 체험했다. 그리고 조금씩 변하는 런던의 모습을 지켜봤다. 특별히 많이 배운 사람은 아니다.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말년에 그의 유일한 낙은 공원에 나가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세계 여행책을 뒤적이며 사진으로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영국 남자의 일생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일생을 담은 책이다.
평범한 사람의 노년을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하니 그 인생이 참 거룩해 보인다. 어스본이 처음 그를 봤을 때는 노숙자 아니면 정신이상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의 인생인들 소중하지 않으랴만 그는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현대 예술은 죄다 이상한 것 같아요. 내가 이해 못하는 것들, 그림이 아닌 것들은 익숙하지 않아요. 나는 옛날 그림이 좋아요. 오래된 것들, 100년에서 300년쯤 된 것들이에요>. 얼마나 솔직한 대답인가. 나머지 썰은 사진 몇 장으로 대신한다. 나는 왜 이렇게 쓸쓸한 사진이 좋은 것일까.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뭐냐는 물음에 관한 대답이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열쇠들이에요. 그리고 버스 카드, 그리고 벨트, 담배 한 개비나 1파운드 동전을 잃어버렸다면, 다시 채워넣으면 돼요. 하지만 열쇠를 잃어버렸다면 집 밖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버스 카드가 없으면 집에 갈 수도 없어요. 그리고 바지가 흘러내려도 버스에 태워주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 중요한 물건들이지요>. 그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었다. 조지프 마코비치는 여든일곱 번째 생일을 닷새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1927. 01. 01 - 2013. 12. 26. 그의 연보다.
평생 떠나지 않았던 이스트 런던을 바람처럼 떠났다. 그의 소박한 관이 런던 동부의 유대인 묘지 땅속으로 내려졌다. 사진가 마틴 어스본은 말한다. <인생은 상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살 수 있는 동안 살아라. 이것이 조지프가 떠나며 내게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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