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건널 수 없는 나라 - 최서림

마루안 2018. 3. 12. 19:15



건널 수 없는 나라 - 최서림



서울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
공기가 다르고
마시는 물이 다르다.
땅이 다르고
집이 다르다.
한 나라에서는 주거 공간인 집이
다른 나라에서는 황금알이고 브랜드다.
원래 집은 흙 위에다 짓는 것인데
흙에 관심 없는 나라에서는 땅 위에다 돈 위에다 짓는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냄새가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얼굴 모양, 허리선이 다르다.
무, 배추, 쌀이 다르고
똥이 다르다.
돈이 굴러가는 속도, 머리 굴러가는 속도가 다르듯이
시간의 질이 다르다.
같은 땅 덩어리에 살면서도
서로 언어가 다르고
종족이 다르다.
한강을 넘는다는 것이 한쪽에서는 入城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추락이다.



*최서림 시집, 물금, 세계사








가난한 이웃들에게 내리는 비 - 최서림



울퉁불퉁한
마음속으로 내리는 비


부글부글 끓어올라 넘치는 몸을
앞산처럼 푸르게 가라앉혀 주는 비


타워 팰리스에도
구룡마을 따개비 같은 지붕 위에도
앞뒤 좌우로 콱콱 막힌 세월 위에도
골고루 골고루 내려주네


무릎보다 마음 먼저 꺾여
속으로 산사태가 나는 목숨들,
시간을 제 나이테 안에 옭아매지 못해
풀려버린 가난한 이웃들도 흠뻑 적셔주는 비


볕받이와 그늘받이로 갈라진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이 불공평한 도시에서
햇빛과도 공기와도 다르게
차별 없이 두루두루 내려오네


쭈그러지고 깨진 것들을
고르게 고르게 다듬어주고 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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