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하늘로 띄우는 부고 이은심

마루안 2018. 3. 11. 20:17

 

 

하늘로 띄우는 부고  이은심


잡은 손을 가만히 놓고 여든 해 살아 내린 자리 거두십니다
가도가도 춥기만 했던 당신의 마지막 호사스러움이 한 줄기 햇빛으로 따사로운 산 자들의 마을에서
그만 자자 자자 이천서씨애하지묘로 분가해 가는 날
창이 없는 방 하나 마련합니다
애초에 곁을 주지 않는 게 죽음이라 한 몸 누일 단칸방입니다
당신 가슴 철렁이며 숯검정이 되어갈 때
나는 철없이 출렁이며 떠돌았으므로
휘파람이나 붑니다
마른 나뭇가지 뚝뚝 분지르는 휘파람이나 붑니다
당신의 그 나라로부터 돌아온 사람은
하나 없으니
이후로는 아무도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겠으며
누가 참나무 뜨끈한 불을 지펴 첫 밤에 드시는지
골짜기엔 저녁 이내 자욱하고
행여 먼저 돌아와 계실까 왈칵 열어 본 빈방에서
나는 오늘 참으로 만만한 이름 하나 잃었습니다, 어머니

 

 

*시집, 오얏나무 아버지, 한국문연

 

 

 

 

 

 

밤꽃 냄새 - 이은심

 

 

근조등(謹弔燈)이 하나 죽음의 뒤를 비추는 상가(喪家)

정작 슬픔은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대문 밖 텃밭에 서성인다

수상한 밤꽃 냄새

 

흙더미에 누구도 대신 먹을 수 없는 알약들이 쏟아져 있다

아무리 세어도 한 사람이 모자라는 밥상에서 한 벌의 수저를 내려놓고

살아 있는 죽음과 죽어 있는 삶을 바꿔치기 하면

다시는 눈 마주칠 일 없겠구나

혼자 갈 수 있다고 떼를 쓰는 천길

몸의 낭떠러지

누군가 한 마디만 거들어도 느닷없이 목이 메이는 것은

이 덧없음이 아니라 내일 다시 푸르를 저 하늘이다

 

우리가 몰랐을 뿐 죽음은 내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일찍 핀 꽃이 일찍 진 자리에서

우리가 죽음을 편드는 것은 해마다 봄이 오면

그 공중에 틀림없이 노랑나비의 길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만지지는 못할 텅 빈 손 하나

근조등을 들고 서 있고

아주 가까이서

사람을 찾아 떠도는 그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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