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밥심 - 김나영

마루안 2018. 2. 17. 21:32



밥심 - 김나영



김 노인과 타관에서 온 둘째 아들 내외
그리고 어린 손자가 식당에 마주 앉아 있다, 억지로
끌어다 갖다 붙인 저 불편한 그림 밖으로
손자가 손을 내밀자 그림이 꿈틀, 살아난다.


지난밤 골목도 솔깃 귀를 세우던 저들의 해후가
급기야 밥그릇 싸움이 되어 새벽까지 길게 이어졌다.
저들 어금니에는 아직 뱉어내지 못한 집안 내력이
압정처럼 깊이 박혀 있을 것이다.


'들자!' 김 노인이 마른 입을 떼자
세 사람이 숟가락을 든다.
수 천 밥그릇을 비워냈을 김 노인과
막 밥맛을 배우기 시작했을 손자 사이
가족이어서 더 사이 나고 말았을
더는 좁힐 수 없는 젓가락 같은 간극이
한 끼의 허기 앞에 찰지게 엉겨붙기 시작한다.


네 사람의 밥그릇이 만장일치를 보고 있다.
붉은 살 둥둥 떠 있는 고깃국 앞에
깍두기 감자조림 김 묵사발 앞에
목 꺾고, 무릎 꺾고
밥그릇이 순해질 때까지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어린 손자가 밥그릇 둘레까지 맛있게 핥고 있다.



*시집, 왼손의 쓸모, 천년의시작








어느 가난한 섹스에 대한 기억 - 김나영



온 동네가 가난을 식구처럼 껴안고 살던 시절
언니와 나는 일수(日收) 심부름을 다녔다.
우리 집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일수(日收),
월곡동을 지나 장위동을 거쳐 숭인동까지
카시오페아좌처럼 뚝뚝 떨어져 있는 다섯 집을 다 돌면
일수 수첩 사이에서 돈의 두께가 부풀어오르고
내 가슴에 도장밥 빛깔의 별들이 철없이 떠올랐다.
일수 수첩 속에는 각각 다른 여러 겹의 삶들이
붉은 도장의 얼굴을 하고 칙칙하게 접혀 있었다.
어느날 추위를 툭툭 차며 집에 도착했을 때
'벌써 갔다 왔니?' 하던 엄마의 이마에 송송
맺혀 있던 땀방울과 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파도처럼 널브러진 이불, 들킨 건 나였다.
아무것도 못 본 척 문을 닫고 나오던 내 뒤통수를
쌔리며 사춘기는 내게로 다급하게 휘어들었다.
삼십 대 후반의 젊은 부모에게
꼭 묶어두어도 터져나오던,
때론 밥 생각보다 더 절박했을,
한 끼의 섹스가 가난한 이불 위에
일수 도장으로 찍혀 있던, 겨울 그 단칸방.
언니와 나는 일수(日收) 심부름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