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신천(新川) - 안상학

마루안 2018. 2. 17. 09:41

 

 

신천(新川) - 안상학

 


어둡구나 어둠의 시절과 더불어
썩어 흐르는 신천
우리들의 캄캄한 그리움은
어디로 흐르는 것이냐
강변 언덕배기 포장마차에서
지친 노동의 하루를 달래고
기름때 낀 손을 조아려 담배불을 나누면
우리들의 그리움은 흘러
무엇을 이룬다냐


쓸쓸히 헤어져 돌아와 누운
산동네 하꼬방에 번지는 쥐오줌
애인이 흘리고 간 사랑의 흔적처럼
벽에 거꾸로 매어달린 채 야위어가는
무수한 안개꽃 같은 슬픔의 파편들이
젖은 눈길에 박혀든다, 우리들의 여가는
밥과 잠을 위한 시간일 뿐
밤낮 없이 형광등 불빛 아래
부나비처럼 모여 일만 하는
벌레무리


살아흐른다는 것은
이렇게 서럽기만 한 것이다냐
썩은 물만 흐르는 신천
저 깊은 어둠의 중심을 향하여
슬픔의 젖은 파편들을 뽑아 던진다
파편들은 단단한 돌멩이로 날아가
신천 깊은 어둠과 맞선다
무심하게
무심하게 새벽은 밝아오는데
몸 뒤척이는 우리들의 희망은
또 이렇게 어둡기만 한 것이냐
어둡기만 한 것이다냐


 

*시집, 그대 무사한가, 한길사

 

 

 

 

 


빈혈의 애인ㆍ7 - 안상학
-들꽃 그대


그대 무사한가
밤새워 내린 비
비바람 속에서 그대는
무사한가
저 아침 햇살처럼


무사한가
뿌리 내린 그대 땅
처절하게 끌어안은 실뿌리 사랑
사랑은


무사한가
아침이슬 머금은
하많은 들꽃 중에 하필이면
맑은 두 눈을 가진 그대
그대는

 

 

 

 

 

# 오래 된 시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들춘다. 1991년에 나온 시집이다. 서른을 코앞에 둔 시기에 쓴 안상학 시인의 파릇파릇한 시들이 가득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았다.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쪼록 무사하기를,, 그동안 망가진 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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