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호수 여인숙 - 이강산

마루안 2018. 2. 11. 20:08



호수 여인숙 - 이강산



그러께 늦가을 201호실에 첫발 담가둔 내 몸에서 꽃이 피려는지 무릎이 결린다


낡은 책가방 같은 호수의 방,
이 호수는 지름길이 없어 누구라도 숫돌처럼 살점 잘라내고서야 간신히 닿는다


늦가을 내 발 닦아준 신 양은 왼쪽 엄지발가락이 잘려 가까스로 호수에 떠 있다


내 손목 끌고 온 늙은 청둥오리는 밤길이 두려운지 저만치 문 밖에 앉아 쉰다


청둥오리도 신 양같이 호수 밖 어딘가 떠나려는 방향으로 물갈퀴를 숨겨두었을 테지만


꽃만 보아도 무릎이 결리는 쉰 넷,
지금은 청둥오리처럼 잠시 쉬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때


이 호수를 무사히 건너려면 나는 호수 벽지의 목단꽃만큼은 꽃을 피워야 한다



*시집, 모항, 실천문학사








그물 - 이강산



역 앞 중동 골목은 고군산열도다


수도여인숙 원앙여인숙 부자여인숙 이쁜이집.....
섬과 섬 사이 그물이 촘촘하다
그물 하나 내 아가미를 휘어잡는다


-아저씨, 2만원이야. 이쁜 애들 있어.


어머니보다 늙은, 뼈만 남은 그물이다
저 그물 하나로 일생 한 우물만 팠으니
사막 같은 생의 어디를 찔러도 바닷물이 솟겠다


-쉬었다 가. 들어와 보고나 가.


지폐 두 장이면 누구라도 닻을 내리는 고군산열도,
아저씨도 이쁜 애들도 섬조차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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