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은하수 건너 서쪽 - 허림

마루안 2018. 1. 22. 20:43

 

 

은하수 건너 서쪽 - 허림


신발을 벗자 알루미늄 가루 쏟아졌다
불빛에 하얗게 반짝이는 미세한 입자들 은하수 같다

밤마다 은하수 건넌 적 있다
하루 종일 나사못 박다보면
내 몸도 나사처럼 어디론가 뚫고 들어가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창문이 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하늘이 새롭게 열린다
은하수 건너편에서 오는 햇살이 막 창문 넘어선다

사월에 내리는 눈 아랑곳 않고
이미 꽃들은 피어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나사못이 손에 박힌다
여기저기 나사못이 박힌 몸이 노을처럼 붉다

창문 하나가 열린다
저녁 늦도록
가난한 이야기들
은하수 건너 서쪽으로 가곤 했다


*시집, 말 주머니, 북인


 

 

 

 

소한 - 허림


얼금뱅이 곰보가 사는 둑방길
감나무 밑을 지나가며 까치밥 바라본다
늦은 저녁 읍으로 가는 길이
조금씩 얼어붙어 미끄럽다
그 길에 내 안부를 묻거나
생계의 비밀을 아는
낯익은 얼굴들 바람처럼 지나가고
메 미이일 묵 김빠압
찹싸알 떡 장수의 목소리가 맑게 멀어져간다
입안에 자꾸 침이 고이고
다시 이 골목을 지나면
한 모 사서 먹어야겠다고
잔뜩 웅크리고 앉아 기다리다가
앞강에서 여우처럼 우는 소리를 들었다




*自序

사랑
하는 일만큼이나

모르고
모르면서
모르게
아직도 붙들고 있는 걸 보면
미련하고 미친 짓인데

결국 시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나를
어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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