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볼 수 없었기에 떠났다 - 정윤수

마루안 2017. 12. 26. 21:21

 

 

 

밑도 끝도 없이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이 책은 제목도 내용도 딱 내 이야기다. 오래 전 가랑잎처럼 홀로 떠돌 때 고독은 나의 친구였다. 지금도 여전히 외로움을 비타민처럼 여기며 살지만 여행길의 고독은 얼마나 황홀했던가.

이 책은 정윤수가 홀로 떠난 발자국을 따라간 흔적이다. 여행 안내서는 아니고 여행 인문학이라 해야 맞겠다. 홀로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 대한 당당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여행길은 대부분 예전에 내가 갔던 길이다.

시대와 함께 도로는 포장되고 풍경은 바꼈으나 인문학적 풍경은 오롯이 책에 담겼다. 새것이 좋은 것인 시대이기에 조금만 낡으면 부수고 새것이 들어선다. 정윤수의 여행길도 이런 곳이 대부분이다. 19살에 청춘의 무게를 자전거에 싣고 전국을 여행했던 청년은 어느새 중년이 되어 30여 년이 지난 풍경을 떠올린다.

장대비를 피해 어느 시골 처마밑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징소리가 들린다. 무당이 굿을 하며 치는 징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저자는 그때 이미 빼어난 예술적 감성을 지닌 지식인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그가 떠난 여행길은 전국을 아우른다. 지구상의 어느 한 군데가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만 조국의 산하는 사무치게 아름답다. 높은 산이나 빼어난 풍경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으면 어디든 아름다운 곳이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적인 여행이다.

강원도 산골과 동해안 그리고 7번 국도를 거쳐 남녘의 해변 도시까지 그는 자전거를 끌고 몇날 며칠을 여행하며 고국 땅을 몸으로 체험한다. 눈으로 체험한 여행과 몸으로 여행한 체험은 여행의 무게에서 많이 다르다.

책의 후반부에는 문학이 담긴 장소로의 여행이다. 이 길 또한 예전에 갔던 길을 다시 간 곳이 많다. 30년 전에 자전거나 도보로 갔던 길을 중년이 되어 승용차나 기차로 여행한 길이다. 당시의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가슴 속의 추억은 변함이 없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10권 읽어서 1권 정도의 독후감을 블로그에 남긴다. 까다롭게 골라 읽는데도 후기를 남기고 싶은 책은 10권 이상 읽어야 겨우 하나 걸린다. 게으른 것도 이유다. 누가 책 하나 골라 주세요 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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