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폭설 - 육근상

마루안 2017. 12. 24. 11:37

 

 

폭설 - 육근상

 

 

제설차 한 대 오지 않는 세상

어디로 가야 하나

오촌 댁이라도 가볼까

거기도 죽는 소리 한가지인데

 

대학이랍시고 나와

눈만 높아져 악다구니 쓰던 막내 년

뛰쳐나간 지 넉 달째 소식 없고

엄니는 잠결에도 막내만 부르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 가 취직자리 부탁해야 하나

 

어스름 눈길 미끄러져

부속고기 집에서 소주 마시다 보면

실없이 웃음 헤퍼지는구나

싸대기 때리는 눈발만

바짓가랑이 부여잡고 울어쌓는구나

 

 

*시집, 절창, 솔출판사

 

 

 

 

 

 

면벽 - 육근상


재래시장 쪽방에서 소주 마시는 날 있지만
날리는 눈발이 별소릴 다하며 어르는 날 있지만
한 숟가락씩 뚝뚝 떠먹는 순대국밥은 알까
사는 일 각박하여 싸움이라는 말 생겨나고
눈물이라는 말 생겨나고 깨진 세간살이가 생겨난 것인데
사내라는 말 앞에서 왜 울화통이 터졌을까
갈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날리다
쪽방에서 바람벽 바라보고 있는데
허옇게 종아리 까고 누운 파단 같은 딸아이 찾아와
그만 마시고 밥 먹으라는 말 속으로
싸락눈 뛰어 날린다
발 떨어지지 않고
자꾸 콧물만 흘러내린다

 

 

 

# 시인 육근상은 1960년 대전 출생으로 1991년 <삶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삶의 주변에 떠도는 상처와 결핍, 그리고 희망을 쓰다듬는 시를 쓰고 있다. <절창>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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