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을 버린 후 - 강영환

마루안 2017. 12. 14. 22:24



사랑을 버린 후 - 강영환



서슬이 가시지 않은 동쪽 하늘은
한 점 티끌도 없이 죽어간다
낯 뜨거운 정오, 핏발 선 눈 하나가
공중을 선회하는 한 적의(敵意)
견고한 발톱이 하늘을 꿰찬다
살점 묻은 발톱에 깊게 패여 가는
지상에 남은 골을 다시 날아간다
원시로 가는 숲이 문 밖에 있다
식욕은 끝없이 멀다 독수리여
식상한 침묵에다 옷을 벗은 도시
탁자 위에 놓인 빈잔 속으로 지고 말
한 잎 꽃떨기가 지듯 사랑은
멀미 없이 강하하는 눈먼 날개다



*시집, 울 밖 낮은 기침소리, 책펴냄열린시








밤 벚꽃잎을 손에 받으며 - 강영환



죽은 벚나무 가지에도 서녘물이 든다
물들지 못한 나무는 스스로 어두워지고
검은 산이 떠받드는 등 뒤 하늘에서
총총한 별들도 꽃이 되는 시간이다
두견새 우는 밤늦은 사월을 몰랐다
그 피울음에 핀 꽃이 흔들리고
바람소리 속속 자지러지는 굽은 가지에서
불순한 일기는 뼈 속까지 아프게 한다
떨어진 별을 줍는 눈물겨운 불빛들
몸부림에 젖은 낙화는 눈물이 아니든가
이승에 남은 무엇을 속죄하고 싶은가
몰랐다 새벽이 가까워오는 아직도
몸이 떨리고 있는 내 나무여
죽은 가지를 물들이고 가는 서녘 핏빛이여
우리는 어둠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닫히지 않는 가슴에 남은 말이
꽃이 지는 밤에 네 기침소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