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표에 대한 상처 - 조정권

마루안 2017. 12. 13. 19:56



우표에 대한 상처 - 조정권



옛날에 나는
내 삶에
대지가 갓 발행한 파릇한 풀잎을 붙이고
나도 모르는 곳으로 나를 발송해 버렸다.
하얀 나비들과 함께
나도 모르는 곳으로.
오랜 세월 나는 수신지 없는 편지처럼 떠돌았다.
(내 삶은 수신자가 없다.)
눈 덮인 산꼭대기
흰 수염의 거주자 그 윗분에게.
어딘지도 모르고
어딘지도 모르는
기슭으로. 나는 봉함한 채
나도 모르는 곳으로 발송해 버렸다.
오랜 세월 나는
삶에 침을 발라
나를 발송했다.
내가 본 것은 먼 산 무 장다리 밭의 흰 나비들.
눈부신 흰 눈 왕관을 쓴
먼 산,
내 삶은 그 침묵의 하얀 왕관 앞 미봉된
봉투.(그 안의 내용은 물론 엉망이고 말고.)
경박스러운 내 삶의 글씨.
오랜 세월
갈지자로
나는 헤맸다.
내 뒤통수는 세상을 떠돌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알았다
내 삶이 반송되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 옆에서 파도 소리처럼 살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한테 어떤 사람을 전해 주려 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어떤 기슭에 모래가 쓴 시를 보여 주려 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시집, 고요로의 초대, 민음사








삶 - 조정권



연탄난로야 홀로 내 집 좀 지키렴.


나 좀 멀리 더나 있을 거야.


김치찌게 냄새야 이제 나하고 먼 길 같이 가자.



*시집, 시냇달, 서정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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