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通

김지연 사진전 - 감자꽃

마루안 2017. 12. 12. 22:11






간만에 아주 가슴 떨리는 전시를 보았다. 갤러리 류가헌은 이따금 산책 삼아 가지만 너무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어서 큰 맘 먹지 않으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그래도 류가헌은 좋은 전시가 많아 자주 가는 갤러리다.


이번 김지연 전시 소식도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전시장은 최신식 건물이지만 사진은 아주 오래된 풍경이어서 이채롭다. 예전부터 사진전은 부지런히 쫓아 다녔기에 웬만한 전시는 놓치지 않았는데 기억을 더듬어서 김지연 작가와의 인연을 갖다 봍인다.


아주 오래전에 인사동에서 정미소라는 전시를 처음 열 때 작가의 사진을 처음 보았다. 당시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나는 참 많은 것을 느꼈다. 그때는 많은 사진전이 설치 미술과 결합해 추상적이고 모호한 작품이 많았는데 이 분의 사진은 정통 사진에다 사라져 가는 풍경을 담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동네 정미소에서 동무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지붕에서 벽까지 초록색 함석을 두른 정미소는 조금씩 군데군데 녹이 슬기도 했으나 우리들의 숨바꼭질을 멈추지 않았다. 작동을 멈춘 정미소에 들어가 가끔 기계 속에 남은 몇 톨의 쌀알을 꺼내 먹기도 했다. 배고픈 시절의 얘기다.


이후 내가 십 년 훨씬 넘게 해외 생활을 하는 바람에 김지연 작가의 다음 작업은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작가는 정미소 말고도 많은 작업을 했다. 이발소, 묏동, 근대화상회, 낡은 방 등 모두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다. 나는 이런 것에서 진정한 사람 냄새를 느낀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해온 작업 중에서 대표작들을 골라 담은 산문집을 내는 기념이다. 세월의 때가 묻은 작품 속에서 내 유년의 추억과 함께 이미 사라져 버린 풍경들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모두들 새것만이 능사라고 여기는 시대에 나는 왜 이런 풍경에 가슴이 떨리는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해서 이제 칠십에 이른 작가의 여정이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끊임 없이 공부하고 오래된 풍경을 찾아 기록하려는 작가의 진지함에 감탄했다. 우리 것에 대한 진정한 애정은 이런 곳에서 발동한다. 오래 기억될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