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슬픔을 말리다 - 박승민 시집

마루안 2017. 11. 30. 19:09

 

 

 

박승민은 첫 시집을 유심히 읽었던 시인이라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때 슬픔을 참 맑게 걸러낼 줄 아는 시인이구나 했다. 잊고 있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읽었다. 슬픔을 잘 걸러내는 시인답게 제목도 <슬픔을 말리다>다. 이 시인과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영화든 책이든 한 번 꽂히면 그 사람의 작품을 뿌리까지 파헤치며 읽는 편이다. 박승민 시인도 첫 시집에서 너무 인상적이어서 두 번째 시집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좋은 작품이 많이 실렸다. 빠지는 시가 없을 만큼 고른 시편이다.

 

<슬픔을 말리다>라는 제목에서 말리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말리는(乾燥) 것일 수도 있겠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리는(制止)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시집을 읽고 슬픔에 젖은 시인은 말리고(乾燥), 슬픔을 만끽한 독자는 말리(制止)는 것으로 타협을 한다.

 

생전의 내 어머니는 늘 슬픔에 젖어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긍정적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은 슬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텔레비에 나오는 전설의 고향도 유행가도 오직 슬퍼야 했다.

 

슬픈 연속극은 코를 박고 열심히 보다가도 코메디 프로가 나오면 어머니는 그랬다. "저것들은 뭔 좋은 일이 있어서 저리 웃고 떠드냐"였다. 보면서 같이 웃는 것이 아니라 혀를 끌끌 찼다. 춤추며 노래하는 사람을 보고도 그랬다.

 

어머니에게 노래란 오직 슬퍼야만 했다. 그런 어머니를 꼭 닮은 나도 축축 늘어지는 슬픈 노래가 좋다. 내가 조용필 노래가 나오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열성 팬이지만 단발머리나 고추잠자리보다 창밖의 여자와 그 겨울의 찻집을 좋아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도 대부분 슬프다. 박승민의 시에는 습기가 많다. 그의 시를 읽고 나면 금방 비가 올 것 같다. 소나기보다 가랑비나 보슬비에 가깝다. 시집을 젖은 수건처럼 비틀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그의 시는 가능한 느리게 읽어야 한다.

 

흔히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시인 또한 쓴 시를 보면 그가 누군지를 알 수 있다. 시집 맨 마지막에 이런 시가 실렸다. 이 시를 읽으면 박승민이 누군지를 알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아 숨어 있으나 귀한 시집이고 오래 기억할 만한 시집이다.

 

 

그 남자 - 박승민

일출보다는 일몰의 시간에 기대어 씨 뿌리듯 허리를 숙이는 사람

코끼리의 귀와 여치의 입을 이식하고 싶은 사람

자작나무의 백색 상의와 비파나무의 푸른색 하의가 수련복인 사람

말에 잡내를 없애기 위해

늘 자신을 문책했던 사람

삶을 단 한 문장만으로 남기고 싶지만

그 뼛가루마저도 덧없어서 강물에 흩어지길 원하는 사람

살아서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던 의심 많은 심장

그러나 다음에도 이 세상에는 다시 귀환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가 죽는 날 첫눈이나 왔으면

그 눈밭에서 오소리와 너구리가 우연히 만나서 세기의 연애담이나 남겼으면 하고, 가끔 상상해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