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의 가을 나의 신파 - 박이화

마루안 2017. 12. 7. 21:51



나의 가을 나의 신파 - 박이화



거리에 낙엽 쌓이듯
내 가슴에 그리움 주절주절 쌓였으면 좋겠네.
근엄한 사철 같은 사랑도 말고
엄숙한 사철 같은 사랑도 말고
단풍처럼 들뜬 사랑이면 좋겠네.
흘러간 뽕짝 같은 신파라면 더 좋겠네.
여자 나이 마흔,
깊을 대로 깊은 여자 나이 마흔
나 저 거리거리 뒹구는 낙엽처럼
온 몸으로 한 번 사랑해 봤으면 좋겠네.
으스러지도록 바람에게 나를 맡겨 보았으면 좋겠네.
으스스 찬비에 내 생을 흠뻑 적셨으면 좋겠네.
그래서 가랑잎처럼, 젖은 가랑잎처럼
그대 생에 처얼썩! 들러붙었으면 좋겠네.


다시 후렴으로
거리에 낙엽 쌓이듯
내 가슴에 그리움 주절주절.....



*시집, 그리운 연어, 애지








저무는 풍경 - 박이화



돌아오지 않는
강물을 기다리는 다리는
차라리
무너지고 싶을 거다
무너져선 안 되는 것들이
기실은 더 무너지고 싶은
이 기막힌 역설로
나는 그대에게 기울고
강물은 또 그렇게 범람했나보다
허나, 나도 다리도
끝내 무너질 수 없는 것은
내 그리움의 하중이
견딜만 해서가 아니라
강물의 수위가 높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국,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의
그 오랜 기다림이 배경일 때
그대도 강물도
저무는 풍경 속에서
더 멀리
더 고요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 박이화 시인은 경북 의성 출생으로 효성여대 국문과와 경운대 경호스포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서 시집으로 <그리운 연어>, <흐드러지다>가 있다. 2013년  대구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댄스스포츠 트레이너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시인의 첫 시집에 실린 사진을 봤을 때 문득 영화 화양연화에 나왔던 홍콩 배우 장만옥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시를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봤음을 알았다. 이런 시를 읽고 나면 아무리 도발적인 사랑을 해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것이 지나간 짝사랑이든 불륜이든 상관 없다. 그녀의 시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