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옛사랑을 추억함 - 나호열

마루안 2017. 12. 7. 21:28



옛사랑을 추억함 - 나호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나
꽃 피고 바람 불고 속절없이 죄다 헐벗은 채로
길가에 서 있었던 때가 있었나
이제는 육탈하여  뼛조각 몇 개 남았을 뿐인데
얇아진 가슴에 돋아 오르는
밟을수록 고개 밀어 올리는
못의 숙명을 닮은 옛사랑이여
나는 아직 비어 있는 새장을 치우지 않은 채로
횃대에 내려앉은 깃털과
눈물 자국을 바라본다
작은 둥지에는 무모했던, 무정란의
꿈의 껍질 그대로
이제는 치워야지 하면서
또 누군가를 감금하기 위하여
시간을 사육하고 있다
덫인 줄 모르고 내 가슴에 내려앉으려면
튼튼한 날개가 필요하다
한번 날아오르면 별이 된다고
죽어야 별이 된다고
눈물의 망원경은 막막하게
허공을 조준하고 있다



*시집, 눈물이 시킨 일, 시와시학






 


밤과 꿈 - 나호열



대체로 지상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늦은 밤하늘을 바라본다
검은 도화지에 무엇을 그릴 수 있나
망망하게 모르는 사람들 눈빛이 마주칠 때
비로소 태어나는 별들
소름 돋듯 시름 위에 얹히고
멀기는 하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깊은 동굴 속에서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아득하기는 하여도
그 점들이 길고도 짧은 생을 빠져나가는 출구이기에
이 밤은 아직 넉넉하다
여기저기 부싯돌 부딪는 소리 은은한 이 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