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일모도원(日暮途遠) - 김광수

마루안 2017. 12. 4. 21:42

 

 

일모도원(日暮途遠) - 김광수

 

 

그대와

마지막 작별이 두려워

독화살 맞은 들짐승처럼 신음하며

눈 내리는 칼바람 들판을 배회했네

 

붉은 피가 떨어지는 사냥감의 육질과

화려한 깃털의 명리를 쫓는 시늉

주색의 어지러운 장단 속에

헛된 춤을 추다

그대를 잊은 적이 없는데

그대와

마지막 송사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해는 지고 날은 저물어

새들도 모두 날아가

빈 나뭇가지만 휑- 하네

아직 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데

발길에 걸리는 기억의 쇠꼬챙이들에

자꾸만 넘어지고 찢어지네

 

 

*시집,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 문학과경계사

 

 

 

 

 

 

도망(悼亡) - 김광수

 

 

꿈이라면 좋겠네 스냅사진 속의 그대와 나
남산식물원 분수 백합처럼 희게 피어있고
봄 햇살은 그대 빨간 구두 위에서
즐겁게 물장구치고 있는데
어디로 갔는가?
어디에 있는가?
꿈이라면 좋겠네
이승의 어느 귀퉁이에서
같이 숨만 쉬고 있어도 좋겠네
방 천장에도 자동차 안에서도
그대
풀잎처럼 웃고 있는데
눈만 감으면 가슴이 욱신거리네
가슴을 만지면
뼈가 저리네
꿈이었네
꿈처럼 거짓말이면 좋겠네

 

 

 

 

# 김광수 시인은 1964년 전남 구례 출생으로 전남대 사법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방불교대 승가학과를 졸업했다. 중국 상해 복단대에서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했다. 2002년 계간 <문학과경계> 시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