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모도원(日暮途遠) - 김광수
나
그대와
마지막 작별이 두려워
독화살 맞은 들짐승처럼 신음하며
눈 내리는 칼바람 들판을 배회했네
붉은 피가 떨어지는 사냥감의 육질과
화려한 깃털의 명리를 쫓는 시늉
주색의 어지러운 장단 속에
헛된 춤을 추다
나
그대를 잊은 적이 없는데
그대와
마지막 송사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해는 지고 날은 저물어
새들도 모두 날아가
빈 나뭇가지만 휑- 하네
아직 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데
발길에 걸리는 기억의 쇠꼬챙이들에
자꾸만 넘어지고 찢어지네
*시집,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 문학과경계사
도망(悼亡) - 김광수
꿈이라면 좋겠네 스냅사진 속의 그대와 나
남산식물원 분수 백합처럼 희게 피어있고
봄 햇살은 그대 빨간 구두 위에서
즐겁게 물장구치고 있는데
어디로 갔는가?
어디에 있는가?
꿈이라면 좋겠네
이승의 어느 귀퉁이에서
같이 숨만 쉬고 있어도 좋겠네
방 천장에도 자동차 안에서도
그대
풀잎처럼 웃고 있는데
눈만 감으면 가슴이 욱신거리네
가슴을 만지면
뼈가 저리네
꿈이었네
꿈처럼 거짓말이면 좋겠네
# 김광수 시인은 1964년 전남 구례 출생으로 전남대 사법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방불교대 승가학과를 졸업했다. 중국 상해 복단대에서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했다. 2002년 계간 <문학과경계> 시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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