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관념적이었다 - 박상천
사랑의 아픔 때문에 삶을 버린 이의 기사를 읽으며
고귀한 삶을 그렇게 버렸다고
난 그를 비난했었다.
이제 그를 비난했던 지난 날을 후회한다.
사랑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떠나간 후 어떠한 가치도
그에겐 더 이상의 삶의 이유가 될 수 없고
그 무엇도 사랑이 떠난 그 자리를 메꾸어 줄 수
없다는 걸 몰랐었기 때문이다.
선택을 앞에 두고 몸을 떨어야 했을
그 고뇌의 무게를 재지도 못하면서
그를 비난했던 나의 어리석음,
나는 너무 관념적이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시집,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문학아카데미
표백 - 박상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면손수건 한 장,
세탁기 속에서 표백되어 가는 것과 같다.
빳빳했던 분노의 풀기와
슬픔의 소금기,
함께 넣어두었던 만년필에서 묻어나온 사람의 흔적과
그 손수건의 가에 둘러진 파아란 선(線)의 기쁨
모두 시간의 세제에 의해 점차 씻겨지고 표백되어
우리는 드디어 닳고 닳은,
닳고 닳아
얄팍해지고 성글어지면 면손수건 한 장으로 남는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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