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길 위에 흔들리다 - 김재진

마루안 2017. 12. 4. 19:24



길 위에 흔들리다 - 김재진

 


도처에 죽음이 입간판처럼 깔려 있다.
길의 끝에
도착하지 않은 이별을 기다리는 사람들 서성거리고
멈추어 서서 보면 이 길,
어디로 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끝난 것이다. 예행연습도 없이
몇 번의 삽질,
삼베 옷자락이나 적셔놓고
그렇게 시시하게 끝나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는 강물에다 눈물 하나 보태고
죽음은 그렇게
정거장마다 서 있는 사람들을 일별하며 가는 것이다.
계획된 의식도 없이 흙은
자신의 일부가 될 육신을 받아들이고
몇 번의 삽질을 허락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 길,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죽은 이의 주민등록 번호를 외며 가는 길,
여기서 비롯된 것인가 우리 삶의 본적?
보다 빨리 사망 증명서를 떼기 위해 나는
구청까지 가기로 한다.
죽은 이의 증명을 위해
길 위에 흔들리다.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림같은세상

 

 






먼 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 김재진



감잎 물들이는 가을볕이나
노란 망울 터드리는 생강꽃의 봄날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수숫대 분질러놓는 바람 소리나
쌀 안치듯 찰싹대는 강물의 저녁인사를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미워하던 사람도 용서하고 싶은,
그립던 것들마저 덤덤해지는,
산사의 풍경처럼 먼 산 바라보며
몇 번이나 노을에 물들 수 있을까.
산빛 물들어 그림자 지면
더 버릴 것 없어 가벼워진 초로의 들길 따라
쥐었던 것 다 놓아두고 눕고 싶어라.
내다보지 않아도 글썽거리는
먼 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