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치매에 관한 치명적인 소회

마루안 2017. 11. 28. 23:41





 

며칠 전에 친구 아버님이 세상을 뜨셨다. 치매 초기부터 10년 가까이 집에서 돌봄을 받다가 나중 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모신 지 2년 조금 지나서 돌아가신 것이다.


당신이 50대일 때 처음 뵈었다. 가끔 주말이면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적이 있다. 집이 정릉이었는데 친구 아버님은 교육자였다. 일요일 늦은 아침에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화장실에 갈 때면 당신은 거실에서 독서를 하고 계섰다.


딱 선비가 어울렸다. 언제나처럼 한치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다. 인사를 하면 돋보기 너머로 가볍게 목례를 보내고는 다시 책보기에 열중하셨다. 친구도 나처럼 5남매 막내였는데 그래서 친구와 아버지는 가족 중 비교적 살가운 관계였다.


술 담배도 안 하시고 휴일이면 등산을 하거나 가까운 산을 운동 삼아 오르는 게 독서 외에 유일한 취미였다. 친구 말에 의하면 당신은 평소 그렇게 말씀 하셨단다. 자기는 뇌를 많이 쓰는 직업에다 활동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절대 치매 같은 것은 오지 않을 거라고,,


돌아가시기 몇 년 전쯤 친구 집에서 아버님을 봰 적이 있다. 학처럼 꼿꼿했던 선비가 나를 몰라 봤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는 동안 초기에는 어머니가 수발을 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셨다. 그러는 동안 5남매의 관계가 무척 살벌해졌다.

 

폭탄 돌리듯 떠미는 게 싫어서 막내인 친구가 비교적 오래 모셨다. 장레식장 친구 얼굴에서 슬픔보다는 홀가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딱 맞다. 긴 병치레로 온 가족이 지치고 오남매는 점점 멀어졌다.

 

망자가 평균 수명을 훨씬 넘기고 떠났으니 생애에 큰 미련은 없을 것이다. 친구는 평소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것이 치매 걸린 아버지 수발 때문이라며 울컥 하곤 했다. 당신은 자기로 인해 아내와 자식들이 고통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살다 가셨다.


나도 훗날 이러지 말란 법은 없다. 학처럼 단정했던 친구 아버님이 자신은 절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하셨으나 피하지 못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치매가 심해지면서 욕도 많이 하고 폭력적이어서 깜짝 놀랐단다. 치매, 무섭고 치명적인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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