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마루안 2017. 12. 2. 17:18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요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두 가지다. 돈이라도 꿔야할 정도로 사정이 절박하거나 아니면 가슴이 시리도록 외롭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꽤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뭐든지 좀처럼 잘 바꾸지 않는 성격 때문에 10년이 훨씬 넘도록 갖고 있던 전화번호를 작년에 너무 오래되고 기능이 떨어지는 휴대폰을 어쩔 수 없이 교체하면서 바꿨야만 했는데 전화번호 변경 안내를 듣고 연락이 닿은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3년 전부터 내게 수시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전화가 정지되어 있다는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빚쟁이처럼 이따금 번호를 눌렀던 것은 평소에 내가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했기 때문인데 나의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신발 칫수는 세월이 흘러도 항상 그대로일 거라는 말이었다. 그와는 무슨 일 때문에 서로 다툼이 있었고 좋지 않은 감정을 털지 못한 채 연락이 끊어졌으나 세월은 그런 감정을 잊게 만들었고 거의 12년 만에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예전에도 머리숱이 적었던 친구는 그새 이마가 더욱 넓어져서 나이가 나보다 10년은 더 들어보였다.

 

법정에 가서야 해결이 난 이혼까지 겹친 탓인지 무척 피로해 보였다. 어쩌면 그런 곡절이 있었기에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 야, 너는 아직도 30대 같다야. 술이 몇 잔 들어가자 그는 기억력이 되살아났다. 그러더니 예전에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내가 읽어줬던 이 시의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고는 몇 구절을 읊조리며 쓸쓸하게 웃었다. 그가 웃을 때 보니 주름이 잡히는 까칠한 입 주위가 나를 더욱 쓸쓸하게 했는데 입 속에서 금니가 보이길래 재빨리 농담을 했다. 그래도 너는 입 안이 번쩍번쩍 하네. 헛 산 것은 아니니 걱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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