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7번 국도 옆으로 가다 - 박용하

마루안 2017. 12. 1. 21:56

 

 

7번 국도 옆으로 가다 - 박용하

 

 

11월의 저녁이 찾아왔다
해는 짧다,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두께를 헤아릴 수 없는 가을 바람이 흔들린다
불확실하게, 또 1년을 살아야 했다
언제나 다시 살고 싶고
그렇다고 되풀이 살 수 없는 죽음,
밑줄 그을 수 없는 책이 여기에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유한이 거기에 있다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어제처럼 서 있는 숲에서
역시, 생은 짧다. 난폭한 바람의 의지가 난해하다
바다  無의 추억을 확장하고
육체의 슬픈 움직임과 정신의 경사(傾斜)
나는 흑백 필름처럼 굽이치는 국도를 사랑했다
그토록 오랜 창백한 밤을 비춘 집어등 불빛과 청어의 유영,
연민이 일어나지 않는 육체를 증오했다
해변을 따라 파도가 피어오르는 허파,
광포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유성의 뿌리를 태양에 안긴다
누가 내 내면을 열어보라, 거대한 태풍의 왕국이리라
궁전 같은 오두막, 커피포트 같은 식탁
11월 저녁 누가 내면에 대해 떠든다면
술도 없이, 깨달음도 없이, 7번 국도를 보여주리라

 

 

*시집, 영혼의 북쪽, 문학과지성

 

 

 

 

 

 

수평선에의 초대 - 박용하


삶이란 게, 단 한 번 지구 위로 받은 초대라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달빛이 고요를 항해하는 바다에서는 특히 더합니다. 아직까지 자연보다 더 훌륭한 책을 본 적은 없습니다.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입니다. 바다는 지구의 오아시스입니다. 오늘도 인류는 파아란 별 위에서 타락했습니다. 별 촘촘 싹트는 대양에서, 삶이란 게 지구 위로 초대받은 축제라는 생각을 밑도끝도없이 하곤 합니다.

 

 

 

 

# 박용하 시인은 1963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강원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와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영혼의 북쪽>, <견자>, <한 남자> 등이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보면 혼자였다 - 이희중  (0) 2017.12.02
운명의 중력 - 심보선  (0) 2017.12.01
여행자 ― 전동균  (0) 2017.12.01
12월, 방랑자여 슈파로 가려는가 - 박정대  (0) 2017.12.01
희망에게 - 유영금  (0) 2017.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