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닥을 친다는 것에 대하여 - 주용일

마루안 2017. 11. 30. 19:12



바닥을 친다는 것에 대하여 - 주용일



모든 수직이 수평으로 눕는
바닥은 세상에 널려 있지만
진정으로 바닥을 칠 줄 아는 이는 드물다
바닥을 슬픔으로 칠 때 통곡은 통곡다워지고
웃음은 뛸 듯한 기쁨이 되기도 한다
길바닥이나 지하도 바닥 같은
생의 밑바닥 깔고 앉아 뭉그적거려 본 뒤에야
바닥을 치는 일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바닥 치고 일어서면
거기서부터 다시 길인 것도 알게 된다
물에 빠져 익사 직전 캄캄한 숨막힘의 순간,
발바닥에 닿는 강바닥의 촉감에는
바닥을 친다는 것이
바닥을 차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솟구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버려지거나 버림 받은 것들이
마지막으로 이르는 곳이 바닥이지만
바닥이 없다면 호수는 하늘을 담지 못하고
우물은 목마른 이의 갈증 풀어주지 못한다
바닥은 낮고 평평해서 누구나 주저앉고 싶어
바닥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아니다, 결코 머무는 곳이 아니다
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바닥으로 바닥을 탁 차고
다시 길 떠나는 곳이 바닥이다



*시집, 꽃과 함께 식사, 고요아침

 





 
 
상가에 초대받고 싶다 - 주용일

 


상가에 가고 싶다는 것은
내 맘 속 눈물의 수위가 아슬아슬하다는 것이다
그리운 사람이 많았다는 거고
세상살이 드센 일도 많이 겪었다는 것이다
드라이 플라워 같은 얼굴들 앞에서
슬픔이 위태롭게 만조 수위를 넘지 않고
잘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다
얼굴 묻을 가슴 하나 얻지 못해 외로웠다는 것이다
언제나 울어도 민망하지 않은 곳 상가가 제격이어서,
슬픔이 주검과 함께 위로받기 좋은 곳이어서,
나는 때때로 상가에 초대받고 싶다
조문 가서 옛날 상주 대신 울었다던
곡비처럼 눈물 흘릴라치면
뜻 모를 눈물 앞에 상주 눈 휘둥그레지겠지만
주검 앞에서의 슬픔 탓할 사람 어디 있으랴
시원하게 통쾌하게 울고 싶은 날엔
어디 한세상 곱게 마감하신 이의
부고 알리는 전화가 기다려지는 것이다
부고를 장의사처럼 기쁘게 받으며 서둘러
검은 양복 차려입고 집 나서고 싶은 것이다
주검이 사무적으로 처리되는 장례식장 말고
어디 먼 해남이나 통영 바다 가까운
시골마을 부고라면 더 없이 반가울 것이다
낯익거나 낯선 영정 앞에서 눈물이 줄기 이뤄
슬픔을 바다로 다 떠내려 보낸 뒤
세상으로 돌아와 나는 또 눈물의 만조를 기다릴 것이다
다시 그리움의 수위가 높아가고
외로움이 험한 물살 일으키면 만조를 예감하며
상가에 초대받길 기다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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