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물이 완성되는 순간 - 김륭

마루안 2017. 11. 30. 18:53



눈물이 완성되는 순간 - 김륭



철거를 앞둔 임대 아파트 아줌마들 모여
인형 눈을 붙인다

매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새빨개진 눈 비비며 
밤새 눈을 달아준다.
 

말 못하는 곰이나 고릴라에게 눈을 주고

반찬값 몇 푼 챙기는 아줌마들의 수다가

가물가물 칠순 어머니, 눈물을 단추처럼 매달고 사신

당신의 이마 위로 터진다 톡톡

오래된 별처럼,


눈 동그랗게 뜨고 어디 한번 살아봐라
눈 없인 살겠지만

눈물 없이는 살 수 있는 세상인지


막노동 가는 남편 작업복에 병든 닭 같은 자식들 앞가슴에
단물 빠진 껌처럼 으깨 붙이던 얼룩이 별이던가

눈물이란 한사코 칠이 벗겨지지 않는 생(生)의 그늘마저

반짝, 입 열게 하는 금 단추 같은 것이어서


아예 단춧구멍만한 눈물을 달아준다.
눈물을 단추로 채워준다.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문학동네

 





 
 
남자의 꽃 - 김륭

 
 
밥을 먹는 동안 몸이 물처럼 흘렀다는 걸 몰랐더구나. 이즈음 나는 불같이 지나간 연애의 걸음걸이가 매달렸던 눈썹 위 나무의자를 치웠다.


영혼의 도색이 많이 벗겨졌더구나. 바람을 인질로 잡고 사는 게 아니었다. 발바닥이 너무 질겨 코를 파던 꽃의 배후를 알겠더구나.


길에서 태어났으므로 집에서 기를 수 없는 네발 달린 짐승의 울음, 손목을 긋거나 혀를 잘라도 달랠 수 없는 말이 있더구나. 그대 언젠가 지워버린 뱃속의 아기처럼 나는 아무래도 고분고분 발굴될 수 없는 한점 바람의 핏덩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얻기 위해 꼬리를 잘랐으나 저기, 저 꽃들은
바람의 발바닥이 붉다는 농담 따위나 히죽히죽 건넸을 뿐
 

날이 갈수록 색을 더하는 여자가 내 안에 살고 있는 줄 몰랐더구나. 성기처럼 앉아 피를 돌리는 줄 비로소 알겠더구나.


미안하다, 늙어가는 게 미안한 일이어서 이즈음 나는 치사량의 나이를 먹고
눈물의 배후를 캐는 중이다.


*계간 <서정시학>  2008년 가을호





# <눈물이 완성되는 순간>이란 시 제목이 좋아서 노트에 배껴 두었는데 시를 읽다가 제목만 빼고 완전히 바뀐 시 내용에 당황했다. 그동안 발표한 시들을 시집으로 묶으면서 손을 본 모양인데 가지치기를 아주 심하게 한 것이다. 두 번째 시 <남자의 꽃>도 2008년에 발표한 시다. 시집에는 <눈물의 배후>로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많이 수정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보기엔 원판이 더 좋아서 앞서 저장해 둔 시를 그대로 올렸다. 바뀐 내용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번 찍은 후엔 싫든 좋든 영원히 내용을 감수해야 하는 영화에 비해 이런 면에서 시인이 훨씬 자유롭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