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등 뒤의 사랑 - 오인태

마루안 2017. 11. 27. 20:59



등 뒤의 사랑 - 오인태



앞만 보며 걸어왔다
걷다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등을 돌리자
저만치 걸어가는 사람의 하얀 등이 보였다
아 그는 내 등 뒤에서
얼마나 많은 날을 흐느껴 울었던 것일까
그 수척한 등줄기에
상수리나무였는지 혹은 자작나무였는지
잎들의 그림자가 눈물자국처럼 얼룩졌다


내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랑을 좇아
끝도 보이지 않는 숲길을 앞만 보며
걸어올 때, 이따금 머리 위를 서늘하게
덮어 와서 내가 좇던 사랑의 환영으로
어른거렸던 그 어두운 그림자는
그의 슬픔의 그늘이었을까
 

때때로 발목을 적셔와서 걸음을 무겁게 하던
그것은 그의 눈물이었을까
그럴 때마다 모든 숲이
파르르 떨며 흐느끼던 그것은
무너지는 오열이었을까


미안하다 내 등 뒤의 사랑
 

끝내 내가 좇던 사랑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보게 되지만
나는 달려가 차마 그대의 등을
돌려 세울 수가 없었다

 


*시집, 등 뒤의 사랑, 뜨란

 

 

 




 
구절초- 오인태

 
 

사연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만
하필 마음 여린 이 시절에 어쩌자고
구구절절 피어서 사람의 발목을 붙드느냐
여름내 얼마나 속 끓이며
이불자락을 흥건히 적셨길래
마른 자국마다 눈물꽃이 피어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치대느냐
꽃이나 사람이나 사는 일은
이렇듯 다 구구절절 소금 같은 일인 걸
아, 구절초 흩뿌려져 쓰라린 날


독한 술 한잔 가슴에 붓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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