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다시 절벽으로 - 공광규

마루안 2017. 11. 25. 21:03



다시 절벽으로 - 공광규



내가 시시해졌다
부동산, 재태크, 조루증 상담
이런 광고들에 눈이 쏠린다


아찔한 계룡산 능선이나
북한산 바위 절벽
거기 매달려 있는 소나무들이

선택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연을 믿다니
나는 분명히 타락했다

이렇게 쉽게 순결이 구겨지다니

절벽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공광규 시집, 소주병, 실천문학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 공광규



이렇게 희망 없는 중년을
더럽게 버텨가다가
다행히 도심이나 여행길에서
늙은 개처럼 버려지거나 비명횡사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리라
기력이 다한 어느 날 나는
도시의 흙탕물에 젖은 털과
너덜너덜한 상처를 끌고
백 년도 넘게 천천히 살아온
우리 동네 느티나무 아래로 갈 것이다
월산 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볼 때
누가 회환으로 가득 찬
구겨 앉은 늙은 짐승을 알아줄 리 없지만
남들을 따라 짖어온 그림자 같은
안타까운 삶을 망연히 바라보며
망상을 기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