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해 - 박용하

마루안 2017. 11. 23. 19:21

 

 

동해 - 박용하
 

나는 언제나 나에게 끝나고 말았다
그런 나를 넌 물끄러미 지켜봤지

이따금 네가 보고파 嶺(영)을 넘으면
넌 끓어 넘치던 파도를
내 발목에서 식히곤 했지
그때마다 네 헐떡이는 숨소리를 즐기곤 했지

누가 알랴?
네 숨결 부서져 내 폐를 적시는
기사회생의 절대 매혹을

무한?
그건 모두 자네 몫

영원?
그것 역시 자네 몫

난 자네를 떠나 세상으로 나갔지
자넨 나의 원소속이지

언제쯤이면
내가 아닌 눈으로 나를 보고
인간이 아닌 눈으로 인간을 보게 될까

나는 유한을 사랑한다네
나는 유한을 시식한다네

내가 태어났던 곳은
죽기에도 좋은 곳

죽기 전에,
나는 나대로 살 것이다


*시집, 한 남자, 시로 여는 세상

 

 


 

낮 그림자 - 박용하


내 맘대로 안 되고
내 뜻대로 안 된다

그건 서글픈 일
조금 고요한 일

내 그림자조차
내 맘대로 안 된다

그건 서러운 일
조금 호젓한 일

도대체 내 몸대로
할 수 있는 게 뭐람?

비빌 언덕이
자기 자신밖에 없고

나하고 놀 사람이
나밖에 없는 사람

그건 쓸쓸한 일
조금 꿈같은 일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내가 손볼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다

그것조차 쉽지 않다

나는 나한테도
수없이 당한 사람이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 박용하 시인은 1963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강원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 <영혼의 북쪽>, <見者견자>, <한 남자> 등이 있다.

 


그 눈물 많던 소년은
울지 않는 중년 사내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을 달래려 안간힘을 쓴다

부질없는 말에 기대야 하는 자의 숙명 또한 그러하다


*시집 <한 남자> 시인의 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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