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여기 아닌 곳 - 조항록 시집

마루안 2017. 11. 13. 23:17

 

 

 

눈 여겨 보던 시집을 드디어 꼼꼼하게 읽었다. 조항록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인연이 닿아야 하는 법, 책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령 10년 전부터 읽겠다고 메모를 해두고 못 읽은 책들이 있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우연히 노트에 적힌 메모를 읽거나 어딘가에 표시해 둔 책명이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그래놓고도 또다시 순서가 밀려 여태 못 읽은 책이 부지기수다.

조항록 시인은 많이 알려진 시인은 아니다. 그래서 시집을 누가 추천을 해준 것도 아니고 순전히 시를 읽다가 내가 발견한 시인이다. 이미 3권의 시집을 냈으니 이제 중견 시인이라 해도 되겠다. <지나가나 슬픔>부터 <여기 아닌 곳>까지 마음을 움직이는 시들이 참 많다.

첫 시집인 지나가나 슬픔에서 딱 꽂혔으나 그 전에 읽었던 시집들은 당시의 감동을 이미 소모해버렸다. 그래 논하길 넘어가고 여기 아닌 곳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여전히 간결하면서 잔잔하게 읽히는 시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호흡을 질질 끌지 않아 독자가 감정을 허투로 소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시는 눈으로 읽으면서 혀로 핥아야 제맛인데 조항록 시가 그렇다. 그의 시를 낮은 목소리로 낭송해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어차피 시도 세상에 나오면 독자에 의해 생명력이 생긴다. 읽히지 않고 고여 있는 시는 죽은 시다.

시인이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며 아무리 고상한 척 해도 죽은 시를 쓰면 어쩔 수 없다. 술 핑계, 시대 핑계, 가난 핑계,, 시인들은 글발로 잔머리를 잘 굴리기에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읽을 만한 시인의 시집 한 권 추천해 주세요.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시집을 추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