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초개일기 - 김영태

마루안 2017. 11. 3. 12:11

 

 

 

지난 여름 전시회 갔을 때 알게 된 책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아니 다 읽은 것은 지난 달이지만 지금에야 흔적을 남긴다는 게 맞겠다. 그만큼 단숨에 읽지를 않고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지난 7월 류가헌에서 김영태 시인의 10주기 전시가 열릴 수 있게 한 이재준 선생에 의하면 시인의 책을 읽을 때면 침향을 사르고 마음을 정화한 뒤 읽었다고 한다.

이재준 선생은 음악인이자 미술품 수집가로 60여 권에 이르는 초개 선생의 모든 책을 수집했다고 한다. 김영태 시인의 마지막 5년을 동행한 사이에다 초개 선생에 대한 경외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그저 잊혀진 시인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인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글은 남아 이렇게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草芥日記>는 김영태 선생의 메모 같은 일기다. 초개는 김영태 시인의 號로 보잘 것 없는 지푸라기라는 뜻이다. 내 짧은 지식으로 표지만을 봐서는 그 심오한 뜻을 알 수 없고 한글로 설명해줘서야 알았다. 그 일기가 10 주기에 유고집으로 나왔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출판을 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그 흔적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이 책 서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2005년 겨울에 쓰러진 후 지금까지 투병중이다. 전윤호의 <봄>이란 짧은 시는 이러하다.

개를 안고 꽃을 보니
겨울이 떠났다
그릇을 굽고 지붕을 고치니
조금만 더 살고 싶다.

어차피 덤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동안 안 팔리는 춤서적 열 몇 권을 출판해 준 붕우 이규상 형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2007년 草芥訥人 金榮泰

이 책에도 나오지만 김영태 시인은 9개월여의 투병에서 인간이 얼마나 황폐화 되는가를 체험했을 때 전윤호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책 내용은 말 그대로 일기다. 짧은 메모도 있고 한 편의 시와 함께 쓴 일기도 있다.

김영태 시인은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러나 화가보다는 시인과 무용평론가로 활동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관심 분야가 예술 전반에 걸쳐 방대한 지식과 호기심으로 가득함을 알 수 있다. 전방위 예술가, 딜레탕트,, 시인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미술, 시, 음악, 무용, 건축, 연극 등, 선생이 예술지상주의자로 예술을 깊이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대학로 문예회관(현 아르코 예술극장) 가열 123번 좌석에 앉아 춤공연을 봤다. 시인의 고정석이었다. 그 대목에 나오는 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는 춤 보러가서

극장 맨 왼쪽 통로에 있는 자리

가열 123번에 앉아 있습니다

 

춤 공연이 있는 날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누구든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춤 구경하던 늙은이가 결근했나 보다고
보통 저녁 나절
저를 만나시려면 그 자리에 오시면 됩니다
30여 년 가까이 저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보는 것도 業이지요
제가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날
나의 누이들 중 누구 하나
꽃다발 놓고
가는 게 보이는군요
말없이 그가
세상을 떠난 날.

나는 선생의 생전에 그의 시를 유심히 읽지 않았다. 또한 그가 여러 권 낸 무용평론집도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게으른 탓이 가장 크지만 나의 짧은 지식 때문에 그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예술을 다방면으로 사랑하는 멋쟁이 시인이란 생각은 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