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지연된 정의 - 박상규, 박준영

마루안 2017. 7. 7. 19:22

 

 

 

소설보다 더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다. 언젠가부터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거짓말 잘 하는 소설가의 그럴듯한 지어내기에 불과한 것에 시간을 쪼개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예전에는 도스토옙스키와 조정래의 소설을 밤늦도록 읽기도 했었다.

읽어야지 하면서 미룬 책들이 너무 많아 소설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 죽기살기로 책 읽기에 매달릴 생각도 없지만 멍때리면서 양지뜸에서 햇볕 쪼일 여유 또한 없다. 하루가 너무 짧아 무료할 시간이 없다는 것,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지연된 정의>, 제목부터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오마이 뉴스 기자였던 박상규와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이 함께 진행한 재심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그들이 진행한 과정도 흥미롭지만 소설가 뺨 칠 정도로 박상규의 찰진 글 솜씨가 인상적이다.

 

이따금 교수라는 사람이 쓴 책을 펼쳐 보면 내용도 부실하지만 형편 없는 문장력에 놀라게 된다. 시험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은 갔지만 평소 책을 읽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고도 명문대에 유학까지 했다고 버젓이 자랑질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약력부터 무지 저렴하다. 청계산 보신탕집 막내 아들로 태어난 박상규 기자, 땅끝에서 배를 타고 30분 가야 하는 섬 <노화도>에서 태어난 박준영 변호사다. 비주류 기자와 고졸 변호사의 만남은 이런 좋은 책을 탄생 시킨다.

 

재심 프로젝트 1탄 완결판이라 하면 되겠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사건, 그리고 무기수 김신혜 사건이다. 김신혜 사건을 빼고 두 사건은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책은 사건 개요와 경찰이 어떻게 무모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멀쩡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너 사람 죽였지?" 물으면 "예, 제가 죽였습니다."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해가 된다.

 

가난하고, 지적 장애가 있고, 나이가 어리고, 거기다가 뒷배가 될 부모마저 없거나 장애인이다. 자신들을 방어할 지식이나 힘도 없지만 올가미를 씌워 협박, 고문하면 속절 없이 없는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갔다. 

 

박준영 변호사는 아무 댓가 없이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끈질긴 설득 끝에 밖으로 나오게 했고 결국 재심을 끌어내 무죄를 받아 냈다. 처음 피해자들은 누명을 벗게 해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했다. 지난 고초가 너무 두려워서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들이 무죄를 받고 누명을 벗기까지 15년에서 20년 가까이 걸렸다. 박준영은 국선 변호를 많이 했는데 고졸이라는 이유로 의뢰가 없어서 호구책으로 국선 변호사를 했다고 한다. 성의 없고 질 나쁜 국선 변호사가 많은데 가끔은 이렇게 정의로운 사람도 나온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박상규 기자는 망설였다. 그때 했다는 박준영의 말이다. "쉬운 일은 누구나 다 해요! 어려운 일, 아무나 못 하는 일을 해야죠.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글이나 쓰려고 기자 되셨어요? 적당히 편한 길만 찾으면 세상 못 바꿔요."

 

맞다. 이 책은 좋은 기자, 좋은 변호사, 그리고 후마니타스라는 좋은 출판사가 만나 완결을 봤다. 어찌 지연된 정의가 이 사건 뿐이겠는가. 모처럼 보기만 해도 좋은 대통령도 새로 뽑혔고 깨어 있는 시민도 많은 세상이기에 이런 책이 더욱 빛난다.